반도체와 철강에서 '실패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67 · 사진)의 '뚝심경영'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김 회장은 1일 철강부문 사장단 인사를 통해 '전기로'사업의 진용을 재정비하고 최고 제철사로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반도체 부문 주력 계열사인 동부하이텍을 1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은 것을 계기로 처음으로 해외 반도체 기업 인수 · 합병(M&A)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전문가 중용해 철강 부문 강화

김 회장은 이날 이종근 동부제철 부사장(60)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서영준 동부제철 부사장(61)을 동부특수강 대표이사 사장에 임명했다.

이 사장은 1977년 동부제철에 입사해 냉연사업부장,당진공장장,생산본부장 등을 거친 품질 전문 엔지니어다. 수율과 철강 품질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인 동부제철을 이끌 적임자로 꼽힌다. 동부제철이 채택하고 있는 전기로 방식은 고철을 재활용해 열연강판을 만드는 것으로 투입한 고철보다 나은 양질의 강판을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관건이다.

서 사장은 현대종합상사와 현대자동차에서 수십년간 해외영업담당 업무를 한 뒤 올 7월 동부제철로 옮긴 영업통이다. 주로 국내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영업하는 동부특수강의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동부그룹의 철강 부문은 마케팅 전문가인 이수일 동부제철 대표이사 부회장을 중심으로 서 사장과 이 사장이 책임경영을 하는 형태로 운영될 전망이다.

이번 인사는 "전기로로 성공해 세계적 철강회사로 우뚝 서겠다"는 김 회장의 집념이 반영됐다는 게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김 회장은 오래전부터 전기로 방식에 애착을 보여왔다. 국내 선두 철강업체인 포스코나 현대제철처럼 철광석에서 바로 철을 만드는 고로 방식보다는 전기로 방식이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김 회장은 2009년 동부제철 당진공장의 전기로 준공식에서 "전기로가 미래형 철강산업"이라며 "누가 이 사업에 기업가정신을 갖고 도전하는지를 지켜봐달라"고 강조했다. 전기로에서만큼은 세계 최강이 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88%의 수율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 철강업체 누코처럼 전기로에서 세계 최고가 되자"고 임직원들을 독려해왔다.

김 회장은 또 그룹 지주회사 격인 동부CNI의 전자재료부문 사장에 윤인택 한국산업융합학회 부회장(58)을 임명했다.

◆말레이시아 반도체 업체 인수 추진

김 회장이 철강 못지않게 공들이고 있는 분야는 반도체.1997년 동부전자를 세운 이후 비메모리 반도체라는 한우물을 팠다. 다른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에 집중했지만 결과는 혹독했다. 2001년 옛 아남반도체를 인수해 동부하이텍으로 사명을 바꾼 뒤 항상 적자였다. 동부하이텍 적자 탓에 그룹이 휘청거리자 김 회장은 2009년 12월 사재 2800억원을 출연하기도 했다. 이런 뚝심 덕에 14년 만인 올 상반기에 첫 흑자를 냈다.

김 회장은 흑자에 만족하지 않고 곧바로 환골탈태를 선언했다. 지난 7월 "어렵게 흑자를 냈으니 이제는 다른 반도체 업체를 인수해보라"고 지시했다.

동부하이텍은 지난 9월부터 말레이시아 파운드리 업체인 실테라를 인수하기 위해 협상을 벌여왔다. 실테라가 파운드리 분야의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2001년 옛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려 했던 실테라를 인수하면 양사 간 시너지가 높을 것이란 판단도 작용했다. 이 때문에 동부하이텍은 실테라 인수 협상에 적극적이었다. 문제는 가격 차이가 크다는 점.김 회장은 즉시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라"고 주문했다.

박용인 동부하이텍 사장은 지난주 말레이시아로 출국해 실테라 측에 "두 회사의 지분을 교환해 경영권을 인수하는 형태가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동부하이텍 관계자는 "회사 상황이 좋아져 생산능력 확대 방안 중 하나로 실테라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며 "아직 입장 차가 커 다른 대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