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매출 3조원 시대…딜레마에 빠진 정부
"너무 많이 팔려도 안 되는데…."

김승규 복권위원회 사무처장은 지난 22일(토요일) 오후 서울의 한 로또복권 판매점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1등이 없어 당첨금이 430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전국적인 복권 열풍이 분 탓이다. 지난 한 주 동안 팔린 로또복권은 1200억원어치로 평균 470억원어치의 2.5배였다.

◆올 3조1000억원 발행…목표 초과

로또 매출 3조원 시대…딜레마에 빠진 정부
복권위는 27일 사행산업감독통합위원회(사감위)를 열어 올해 목표한 2조5000억원의 복권 발행 계획을 2조8000억원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올 들어 지난주까지 팔려나간 복권은 2조1000억원어치.이 추세라면 올해 예상한 2조5000억원을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 복권위는 한도를 서둘러 늘렸다.

복권위 관계자는 "3000억원을 늘려잡았지만 실제 판매액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며 "내부적으로는 올해 3조1000억원어치가 팔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복권 판매액이 3조원을 넘어서기는 2004년 이후 7년 만이다.

◆연금과 로또복권 시너지 효과

전체 복권시장의 95.6%를 차지하는 로또복권 판매가 올 들어 급성장세를 보이는 원인은 지난 7월 연금복권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연금복권은 1등에 당첨되면 20년간 매달 500만원을 받는다. 확률은 315만분의 1이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인 814만분의 1보다 2.4배 높다. 연금복권은 온라인 복권인 로또와는 달리 매주 발행 한도가 630만장(63억원)으로 정해져 있다. 발행 첫회부터 지금까지 17회 연속 매진 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복권위는 판매점에서 연금복권이 조기 매진되면서 '기왕 온 김에 로또라도 사자'는 사람이 많다며 연금복권 인기가 로또복권의 판매 증대로 이어지는 시너지효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복권의 발행 한도는 사감위가 결정한다. 국내총생산(GDP)의 0.4% 내에서 경정 경마 경륜 카지노 복권 스포츠토토 등 6대 사행산업의 전년도 점유율을 감안해 매출 한도를 결정한다. 0.4%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GDP 대비 로또 발행 금액의 평균치다. 복권위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판매가 늘어난 것이어서 발행 규모를 줄이거나 판매 시간을 통제할 수 없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사행심 조장 VS 소득 재분배 효과

복권 발행 규모가 커지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사행심을 조장하고 서민 주머니를 털어서 세수를 메운다는 비난 여론 때문이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복권사업으로 정부가 저소득층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각종 사업을 벌이는 편법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복권위는 내심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갤럽에 조사를 의뢰해 복권 구매자의 월소득을 분석한 결과 월소득이 높을수록 복권을 많이 산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오히려 복권이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복권 구매자 중 월소득 400만원 이상인 고소득자의 비중이 29.1%에 달한다. 300만원 이상까지 합치면 63.9%까지 올라간다. 반면 199만원 이하의 비중은 2008년 15.8%에서 지난해 10.3%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김 처장은 "로또복권의 1인당 평균 구매금액은 7000원 수준"이라며 "복권의 주구매층이 저소득자라거나 불경기일수록 복권이 많이 팔린다는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올 기금만 1조원…전 부처 눈독

로또복권은 판매금액의 40.7%를 '나눔로또' 기금으로 조성해 다문화 가정과 장애인,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다.

올해 조성되는 기금만 1조2000억원이 넘자 정부도 싫지만은 않다는 표정이다. 징수 비용이 전혀 들지 않고,조세저항도 없는 알짜 돈이기 때문이다. 기금이 커지면서 전 부처가 기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해진 법에 따라 기금의 사용처는 저소득층 주거 안정이나 국가유공자 복지사업,문화 예술 진흥사업 등으로 제한돼 있어 법을 바꾸지 않는 한 임의로 전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