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24일 내년 사업계획과 관련,"내년도 자동차 판매 목표를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며 "한 자릿수 증가율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판매 목표를 하향 조정한 이유에 대해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로 자동차 수요 회복세가 더뎌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 하반기부터 시작된 인도와 중국 등 이머징마켓의 저성장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호시절 지났다"
현대 · 기아차는 2009년부터 3년째 두 자릿수 판매 성장률을 지속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 전 세계시장에서 460만대를 판매,11.0%의 성장률을 보였다. 2010년에는 23.6% 증가한 573만대를 팔았다. 세계 자동차 업계 최고 수준의 성장률이었다. 올해는 13.2% 증가한 650만대를 목표로 잡고 있다. 현대 · 기아차는 내년 판매 목표를 올해보다 6~8% 증가한 700만대 안팎으로 잡고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짜고 있다.
현대 · 기아차가 사업 계획을 보수적으로 잡고 있는 것은 수요증가세 둔화와 함께 업체별 생산 증대로 경쟁은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업체는 대지진 여파에 따른 생산차질에서 정상 수준을 거의 되찾은 모습이다. GM 크라이슬러 등 미국 업체도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며 신차를 대거 내놓고 있다. 이들 업체는 지난 9월부터 미국 시장에서 딜러 인센티브를 대폭 올리면서 공세적 마케팅에 나섰다. 그 결과 5월 10%를 돌파했던 현대 · 기아차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지난 9월 8.3%로 내려 앉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호시절은 지나갔다"며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과 품질이 내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혹독한 시험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재고관리 · 공급과잉 이슈로 부각
업계는 경기침체의 골이 더 깊어지면 내년 하반기 이후 일부 지역에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GM 크라이슬러 폭스바겐과 중국 로컬자동차업체들은 지난 1~2년부터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공장 증설 등 설비투자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댄 애커슨 GM 회장,카를로스 곤 르노-닛산얼라이언스 회장 등 자동차 업계의 주요 최고경영자(CEO)들은 내년 실적에 대해 상당히 불투명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요 증가 둔화→판매 위축→재고 증가→현금 흐름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3000만원짜리 차량의 재고가 10만대만 쌓여도 3조원의 현금이 사라진다"며 "생산보다 재고 관리가 더 중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수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큰 자동차산업의 성장 둔화는 제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현대 · 기아차의 성장목표 하향 조정은 국내 실물경기에 나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