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공구 1100종에 담은 '안전제일의 魂'
이상만 현대중공업 건설장비생산기술부 기장(技匠 · 52)은 무겁고 큰 물건을 고정할 때 쓰는 치공구 분야 달인이다. 지난달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500호 명장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때 그가 소속된 사업본부는 전 세계 건설장비 생산 35만대와 직수출 1조원 돌파라는 겹경사도 맞았다.

이 기장은 1982년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뒤 지금까지 무려 560여종의 치공구와 450여종의 권양(捲楊)지그(건설장비와 부품을 들어올리는 기구)를 제작했다. 첨단 장비와 기계를 대거 투입해도 생산이 쉽지 않은 초대형 건설장비도 그가 손대면 술술 풀려나갔다. 지난해 만들어 낸 120t짜리 초대형 굴삭기가 대표적이다. 이 기장은 상부축 무게만 40여t에 이르는 것을 거뜬히 들어올리는 권양지그부터 상하부 부품을 연결하는 작업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치공구를 자체 개발해 국내 최초로 120t 굴삭기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궁하면 통한다(窮則通)'는 좌우명을 가진 그는 치공구 분야의 개척자다. 그가 입사한 때는 현대중공업 산하에 건설장비본부가 갓 출발했던 때여서 치공구란 개념조차 도입되지 않았다. 모든 일을 수작업으로 하는 바람에 하루 3대 이상의 불도저도 만들지 못했다. 이때 이 기장은 불도저를 손쉽게 생산 조립할 수 있는 전용 치공구를 만들어 3배 이상 생산성을 높이면서 한평생 치공구와 인연을 맺게 됐다.

특허와 매뉴얼화 작업도 이 기장의 큰 업적이다. 치공구와 관련해 16건의 특허와 5건의 실용신안을 출원했다. 치공구와 권양지그는 자동차 생산설비와 달리 모델에 따라 서로 다른 크기로 설계 제작해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인데 이 기장은 수년에 걸쳐 각 공정에 맞게 매뉴얼화했다. 덕분에 회사는 건설장비 분야의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기장도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2001년 울산과학기술대 기계학부에 들어가 기계설계 및 유공압 학사학위도 받았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그는 혹독한 가난 때문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다. 그는 큰 돈을 벌겠다며 공고 졸업과 동시에 경북 봉화의 한 탄광에 취업했다. 6개월여 동안 지하 640m까지 내려가 탄광일을 하던 그는 다행히 공구반으로 옮겨져 갱도 버팀목 등의 제작을 도맡았다.

하지만 3년여 동안 일하던 이 곳에서 두 살 위인 친형이 뒤늦게 함께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참변을 당하면서 그는 탄광일에서 손을 뗐다. 그는 "지금도 갱도를 안전하게 받치는 버팀목을 만들지 못한 것이 너무나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아픔 때문에 그는 안전을 제1원칙으로 삼아 치공구 제작 때마다 혼을 불어넣고 있다.

그는 치공구 작업을 구조물의 종합 미학이라고 강조한다. 구조물 전체 설계에서부터 하중 계산,선박 밀링,유압장치 등 모든 기술분야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전한 치공구 제작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이 기장은 치공구 분야 기능장 제도를 신설해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 건설장비 조립반에서 올해 1등으로 졸업한 둘째 아들 창희씨(25)에게 '대(代)를 잇는 명장'을 기대하는 이유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