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프런티어] 송창근 KMK 회장, 300弗로 시작…年 2억弗 파는 '인도네시아 신발왕'
"신발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

인도네시아 신발 제조 · 수출업체 KMK의 송창근 회장(52 · 사진)의 얼굴에는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지난 13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범한국신발인대회에서 강연을 마친 뒤 기자에게 "신발은 제조와 소재,브랜드 사업을 할 수 있는 희망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울산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송 회장은 국내에서 신발회사에 다니다 '신발 이거 돈이 되겠구나'라고 판단하고 1988년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지금은 신발 제조와 판매로 연 2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나이키'와 '컨버스' 제품을 생산,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고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신발 내수 브랜드 '이글'을 생산 중이다. 종업원 수만 2만여명에 이른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 한인 식당 한 쪽의 작은 공간을 300달러 주고 사무실로 임대했습니다. 식당 주인에게 여권을 맡기면서 음식을 팔아줄 테니 그 공간을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죠.돈이 없어 무역중개에만 전념했습니다. 이렇게 식당에서 적은 비용으로 식사와 무역중개 상담까지 겸하면서 사업을 시작했죠."

무역중개가 활기를 띠면서 자신감도 생겼고 제조업에 진출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마침내 접촉하던 나이키와의 신발 제조 협상을 성사시켰다. 1991년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으로부터 공장을 인수해 신발 제조에 본격 나섰다. 한국에서 배운 신발 제조 기술력과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노동력을 결합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경영 목표도 '종업원 중심 경영'으로 정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종업원들이 청량감을 느낄 수 있도록 물이 뿜어져 나오는 시설을 설치했습니다. 무료로 이발을 하고 언제든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도록 공장 내 이발소와 병원도 만들었죠.한 달에 한 번 종업원들의 집을 방문해 집도 고쳐주고 30달러의 효도비도 지원했습니다. 덕택에 이직률과 불량률이 크게 줄어 생산성도 높아졌죠."

하지만 위기도 찾아왔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나이키의 주문 물량이 끊겼다.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은 대출금 200만달러를 갚으라고 독촉했다. 나이키의 주문을 다시 받지 못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만 할 판이었다. 그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미국 나이키 본사로 뛰어갔다. "인도네시아 현지 종업원이 제 자산입니다. 세계 최고입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종업원이 자산'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나이키 이사진은 "저가 신발제품 주문을 낼 테니 한번 해보라"며 기회를 줬다. 덕분에 은행도 지원을 계속 했고,제품은 속속 팔려나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는 18개 나이키 제조공장이 있었는데 외환위기로 10여곳이 문을 닫았지만 KMK 공장은 지금도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다.

송 회장은 요즘도 직원들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 마술쇼도 하고 음악부도 만들어 함께 노래 부른다. 종업원에게 비전(꿈)을 만들라고 격려하며 '웃음 바이러스'도 퍼트린다. 하루에 100번 이상 웃으라고 한다.

"주주와 은행은 돈을,바이어는 비즈니스를 제공하지만 종업원은 인생 전체를 투자합니다. 종업원만큼 중요한 것이 없지요. 종업원과 함께 서로 웃으면서 희망을 나누면 생산성이 저절로 높아집니다. "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