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년내 사람의 감정까지 알아차리는 스마트폰 나올 것"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시 외곽에 위치한 퀄컴 본사.폴 제이컵스 회장(49)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쭉 걸려 있는 특허장들이었다. 총 45개에 달하는 이 특허는 퀄컴이 아니라 제이컵스 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퀄컴은 6만개가 넘는 통신 분야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나 자신도 매년 꾸준히 특허를 취득하고 있다"며 "매출의 20% 이상을 연구 · 개발(R&D)에 투자해 독보적인 특허를 취득하는 것이 퀄컴의 지속적인 성장 비결"이라고 말했다.

1985년 어윈 마크 제이컵스가 설립한 퀄컴은 1989년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통신 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원천기술 보유 업체다. 국내에서는 1993년 퀄컴의 CDMA 방식을 이동통신 표준으로 정하고,SK텔레콤이 1996년 세계 최초로 CDMA 시스템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퀄컴은 한국의 통신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지난해 퀄컴 매출 중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이를 정도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이동통신의 대세가 유럽의 GSM 방식으로 바뀌면서 퀄컴의 입지가 흔들리는 듯했지만 스마트폰 등장 이후 통신 기능과 애플리케이션(앱 · 응용프로그램) 기능을 통합한 스마트폰용 칩을 선보이면서 제2의 성장기를 맞고 있다. 올 3분기 퀄컴 매출은 지난해보다 34% 증가한 36억2000만달러에 이르고 순익은 지난해보다 35% 늘어난 10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 4분기에도 퀄컴은 지난해보다 매출이 2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이컵스 회장은 "음성보다 데이터를 많이 쓰는 게 스마트폰의 1차적인 변화였다면 2차 변화는 스마트폰이 모든 기기를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10년 사이에 스마트폰이 사람의 상태를 감지해 조언하고 다른 기기와 대화해 필요한 것을 척척 해주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스마트폰의 이런 빠른 진화 가운데 퀄컴의 무한한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이컵스 회장이 밝힌 통신산업의 미래와 퀄컴의 전략을 정리해 본다.
"5~10년내 사람의 감정까지 알아차리는 스마트폰 나올 것"
▼퀄컴의 정체성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6년 전 대표이사를 맡았을 때 퀄컴이 칩셋 회사에서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발전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사실 당시 주위에서는 퀄컴이 무슨 소프트웨어를 하냐고 비웃기도 했지만 우린 개의치 않고 꾸준히 해왔다. 퀄컴은 인터넷 서비스를 개발하고 벤처에 투자하면서 소프트웨어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

▼왜 영역을 확대했나. 퀄컴의 강점은 칩셋 아닌가.

"기존 음성통화 기반 이상의 경쟁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냉장고 세탁기에도 칩셋이 들어갈 것이다. 모든 기기가 통신을 하고 네트워크로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무선통신(wireless)의 뜻이 휴대폰에만 적용됐지만 이젠 모든 기기에 적용된다. 이 말은 칩셋이 보다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달라진 환경에 칩셋이 적응하기 위해선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나 디자인 쪽 기술도 필요하다. "

▼그런 기술을 어떻게 확보하나.

"매년 R&D에 25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한국에도 간다. 한국은 우수한 인재가 많아 벤처기업 투자에 나서는 한편 직접 박사급 인력을 뽑아 세계 시장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

▼과거 CDMA 시절 퀄컴은 독보적인 존재였지만 지금은 경쟁해야 하는 처지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다행히 시장이 달라지면서 기회가 생겼다. 예전에는 휴대폰 칩셋이 통신 역할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앱을 구동해야 하고 그래픽칩 역할도 해야 한다. 퀄컴은 5~6년 전부터 휴대폰 칩셋의 기능이 확장되면 통합 칩셋의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해왔다. 그런 예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

▼스마트폰 시장의 확대가 퀄컴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는 뜻인가.

"스마트폰은 컴퓨터다. 칩셋도 얼마나 컴퓨팅과 다른 연계 기능을 잘하느냐에 의해 승부가 갈린다. 퀄컴의 핵심 제품인 스냅드래곤은 통신 칩셋과 AP(Application Processor)가 결합됐는데 전력 소모는 절반에 불과한 제품이다. 올인원(all in one) 칩셋이기 때문에 이 칩을 탑재하면 스마트폰을 더 얇게,가볍게 만들 수 있다. 한국의 팬택은 이미 이 칩셋을 도입했다. "

▼스냅드래곤이 얼마나 확산될 것으로 보는가.

"2015년까지 스마트폰의 80%가 스냅드래곤을 장착하게 될 것이다. 최근 인텔이 AP를 개발한다고 했지만 퀄컴의 칩셋은 일체형인 데다 무선통신에서 오랫동안 노하우가 축적돼 경쟁력이 뛰어나다. "

▼퀄컴은 스마트폰이 어떤 식으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하나.

"스마트폰이 사람에게 말을 걸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을 들이대면 건물이나 제품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 스마트폰에 눈이 생긴 변화라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나 식당 소음 등을 듣고 어디에 있는지 알아채는 것은 스마트폰에 귀가 달리는 수준의 진화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사용자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좋은지 판단하고 알려주는 역할도 할 수 있게 된다. "

▼스마트폰이 비서 역할을 한다는 뜻인가.

"그 정도가 아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내 차가 범블비(트랜스포머에 나오는 로봇)가 될 수 있다. 애인과 함께 있으면 스마트폰이 자동차와 커뮤니케이션을 해 알아서 로맨틱한 음악을 틀어준다. 사이가 나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스마트폰이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해 도망갈 핑계거리를 만들어줄 수도 있다. "

▼스마트폰이 발전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낙관한다. 정보기술은 앞으로 더 단순해지고,더 싸지고,소외된 계층에 혜택을 주고,친환경적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비싼 진료를 받기 힘든 사람들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원격 진료를 받고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처방을 받게 될 수 있다. "

▼칩셋 출시 계획은.

"이미 스마트폰용 듀얼코어 칩셋은 나와 있고 쿼드코어(머리가 4개인 중앙처리장치)가 조만간 출시될 예정이다. 내년에는 스마트폰에 탑재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

▼한국에 연구소와 벤처투자회사를 설립했는데 성과가 있나.

"한국 R&D 연구소에서 '증강현실 및 소리인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은 퀄컴에 매우 중요한 시장이면서 동시에 많은 기술 개발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개발된 기술들이 전 세계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퀄컴벤처스는 작년에 펄서스라는 한국 벤처기업에 400만달러를 투자했고 올해도 계속 투자처를 찾고 있다. "

▼세계적으로 특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허기업 퀄컴의 입장은.

"특허라는 것은 원래 상대방을 공격하라고 받아놓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특허 전쟁이 벌어지면 결국 모두의 경쟁력을 훼손하게 될 수 있다. 특허는 지식의 이전과 기술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특히 디자인 분야의 특허는 어떤 발전상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기업들에 그 이상의 디자인을 하게 만드는 의미가 있다. "

제이콥스 회장은, 퀄컴 창업자의 셋째 아들…버클리大 기계공학 박사

폴 제이컵스 퀄컴 회장은 어윈 마크 제이컵스 퀄컴 창업자의 네 아들 중 셋째로 퀄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아들이다. 그는 UC버클리 기계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툴루즈의 프랑스 정부 연구소에서 1년간 박사 후 과정을 이수했다.

1990년 휴대폰 디지털 신호처리 소프트웨어팀을 담당하는 개발 엔지니어로 퀄컴에 입사,퀄컴 모바일 기술 개발에 참여했다. 1995년 단말기 · 통합회로담당부서 부사장과 수석부사장을 거쳐 2001년 퀄컴 무선인터넷그룹 사장에 올랐다. 2005년 퀄컴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됐으며 2009년 3월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샌디에이고=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