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음과 비만 ·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 남성들의 전매특허인 '지방간' 증상이 최근 20,30대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특히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지방간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과도한 음주와 불규칙한 식습관,과체중 등이 간 건강을 급속히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의 '2010년 간질환 환자 성향'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남성 지방간 내원환자의 비율은 30대가 35.8%로 가장 많았고 △40대 34.3% △50대 30.6% △60대 24.6% △20대 24.1%의 순이었다.

백승운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최근의 금융위기,주가폭락 등의 스트레스 요인으로,과음 · 비만 · 약물의 장기복용 등 사례가 늘면서 성인 남성들 사이에 지방간이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중 · 장년층은 물론 20,30대 젊은층에서조차 중증 지방간 환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지방간이 너무 흔하다 보니 직장 남성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지방간을 무시하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며 "지방간이 있는 사람 5명 중 1명은 간에 염증이 생기는 지방간염이 생기고 만성간염이나 간경변,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간학회는 오는 20일 '간의 날'을 앞두고 국내 대형 병원에서 성인들의 지방간 유병률이 늘고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지방간 방치하면 간경화 · 간암으로 진행

대기업 과장인 김철호 씨(38)는 요즘 입맛이 없고 극심한 피로감을 자주 느꼈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배가 너무 불러 밥 먹는 것,걷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의사는 "간경화로 복수가 찬 것이며,간 크기도 3분의 2로 줄었다. 지방간을 꽤 오래 방치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잦은 야근과 술자리,비만에 시달린 김씨는 회사에 병가를 내고 당분간 식이요법과 운동 등을 병행하면서 생활습관을 바꾸는 노력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방간이란 간에 지방이 5% 이상 꽉 들어찬 상태다. 간에 고여 있는 지방은 간에서 썩어 과산화지질(썩은 기름에 해당)이 된다. 이 썩은 기름을 실험용 쥐에 주사해 보면 즉사할 정도로 맹독성을 띠고 있다. 이렇게 썩은 기름과 같은 지방 찌꺼기가 많이 쌓이면 결국 간의 활동력이 떨어지면서 간경화로 발전하게 된다.

조용균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우리사회의 중추인 40,50대 사망원인 1위가 간암인데,상당수가 평소 과중한 업무로 복부비만과 지방간을 방치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지방간의 원인이 술이면 알코올성,비만이면 비알코올성으로 나뉜다. 간에 이상을 초래하는 음주량은 남자의 경우 하루 30~40g 이상의 알코올인데 △소주 반병 △양주 2~3잔 △포도주 반병 △맥주 2병 정도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비만,당뇨병,갑상선 기능 항진증,고지혈증 등이 원인이다.

평소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데도 병원 검진에서 지방간이 나오는 경우 십중팔구 과체중에 의한 복부비만이 많다.

최근에는 약물의 장기 복용도 지방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약을 복용하면 모두 간을 거쳐 다른 기관으로 가는데 평소 너무 많은 약(혈압약 등)을 복용하면서 간이 부담을 받아 지방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지방간이 생겨도 특별한 자각 증상은 없다. 다만 간질환의 일반적 증상인 피로,식욕 부진,무기력 등이 나타나고 간이 있는 오른쪽 갈비뼈 아래쪽이 자주 뻐근하다.


◆간 수치가 정상보다 2~3배 높으면 위험

지방간은 혈액검사 · 소변검사 등으로 간 기능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데,간 수치(혈청 GOT,GPT,감마 GT)가 정상보다 2~3배 높으면 지방간을 의심한다.

추가로 초음파 · MRI · CT · 간 조직검사 등을 통해 지방간인지,만성간염인지를 분별한다.

술 때문에 지방간이 생긴 사람이 계속 술을 마시면 알코올성 간염이나 간경변으로 빠르게 발전한다. 심하면 술을 끊어도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없다. 간암 발병의 주요인인 B · C형 간염에 의한 간경변보다 치료 결과가 더 좋지 않다.

지방간 진단이 나오면 한 달 이상 술을 끊고 재검진을 받아야 한다. 또 술 때문에 부족해진 단백질,비타민B · C 등의 영양분을 보충하면서 운동해야 한다.

하루에 30~40분,주 3회 이상 꾸준히 운동하면 3~6개월 내에 대부분 정상 간으로 회복된다. 간 기능이 회복되면 술을 완전히 끊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급성 지방간,알코올성 간염,만성 간염,간경변이 있는 사람은 음주량을 80~90% 이상 줄여야 한다.

지방간은 약물치료보다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음식은 다른 어떤 것보다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 낮은 탄수화물 섭취는 당뇨병 및 고지혈증 개선에도 좋다. 대한간학회는 식약청이 인정한 것을 제외하고,간에 좋다는 민간요법이나 건강기능식품은 오히려 간에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백승운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조용균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