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수수료 인하 거부한 백화점 '길들이기' 나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빅3' 백화점에 입점한 국내외 유명 브랜드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빅3 백화점이 '중소 입점업체에 대한 판매수수료를 낮추라'는 공정위의 요구를 거부하자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들어간 것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10일부터 루이비통 샤넬 구찌 까르띠에 제일모직 LG패션 아모레퍼시픽 MCM 등 8개 브랜드의 국내 본사에 조사관들을 보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공정위는 13일까지 이들 업체를 대상으로 백화점에 내는 판매수수료와 인테리어 비용 및 판촉비 분담 내역 등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조사하나

판매수수료를 둘러싼 공정위와 백화점 간 갈등 시작은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동수 공정위원장이 9개 대형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를 한자리에 불러모은 뒤 "사별 판매수수료를 공개해 수수료 인하 경쟁을 유도하겠다"고 선언한 것.루이비통 등 명품에 대해서는 10% 안팎의 낮은 수수료율에 수억~수십억원에 달하는 인테리어 비용까지 백화점이 다 내면서 중소업체들에는 30~40%의 높은 수수료율과 인테리어 비용 및 판촉비까지 전부 떠넘기는 게 정당하냐는 것이 공정위의 논리였다.

유통업계는 반발했다. "명품은 면적당 매출이 중소업체보다 4~5배 많기 때문에 수수료율이 낮아도 백화점에 가져다주는 수익은 더 많다.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하는 판매수수료에 대해 정부가 왜 개입하려 하느냐"는 이유에서였다.

'중소 입점업체에 대한 수수료 인하 방안을 마련하라'는 공정위의 압박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7개월이 흐른 지난달 6일 김 위원장은 또다시 유통업체 CEO들을 불러세우곤 '10월부터 중소 입점업체에 대한 수수료를 3~7%포인트 낮추라'고 압박했다.

유통업체들이 '어디까지를 중소기업으로 봐야 할지 기준이 모호하다'며 반발하자,공정위는 '기준은 알아서 정하되 인하 폭이 영업이익의 8~10% 규모는 돼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빅3의 지난해 영업이익 규모(롯데 7948억원,현대 2174억원,신세계 2053억원)를 감안하면 1000억원을 내놓으라는 얘기였다. 빅3가 지난달 30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자,공정위가 조사에 들어간 것이다.

◆수수료 인하 합의 빨라지나

공정위와 백화점업계는 '중소 입점업체에 대한 수수료를 낮춘다'는 총론에만 합의했을 뿐 각론에서는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공정위의 요구는 '모든 중소기업'에 대한 판매수수료를 낮추라는 것.제조업체(종업원 300인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하)와 도 · 소매업체(종업원 200인 미만 또는 매출 200억원 이하)를 막론하고 일률적으로 수수료를 떨어뜨리라는 것이다. 빅3가 이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영업이익이 8~10%가량 줄어든다.

반면 백화점들은 주주들의 반발 등을 감안해 국내 중소 제조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영업이익의 1~2% 정도를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백화점보다 훨씬 높은 마진을 챙기는 도 · 소매 업체까지 수수료를 낮춰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명품에 이어 중소 입점업체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빅3를 흠집낼 '꼬투리'를 찾아낸 뒤 수수료 인하 압박 카드로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가 칼을 빼든 만큼 평행선을 긋던 경쟁당국과 백화점 간 '수수료 인하 협상'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공정위가 빅3에 "영업이익의 5% 정도만 희생하라"는 수정 제안을 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백화점들은 "올 것이 왔다"면서도 정부와 지나치게 대립각을 세울 수는 없다는 판단에 각자 새로운 인하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상헌/박신영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