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통념에 빠져 위험 피한다면 기회는 없다"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그것은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과거의 통념,즉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2005년 6월12일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장에 연사로 등장했다. 그는 죽음을 화두로 끄집어냈다. 1년 전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직시하면서 길어올린 내면적 성찰이 담겨있었다. 그는 "외부의 기대,자부심,좌절과 실패 같은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된다"며 각자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 새로운 길을 좇아갈 것을 당부했다.

'창조적 혁신'의 대명사 잡스는 생전에 남긴 명연설처럼 우리 일상에 수많은 새로운 길들을 열어놓고 홀연히 떠나갔다. 유족들은 "잡스가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었지만 결코 이기와 탐욕의 경영자가 아니었다. 미국 젊은이들이 비난을 퍼붓고 있는 월가의 '1% 특권층'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잡스가 보여준 열정과 혁신의 기업가정신은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의 발길을 실리콘밸리로 향하게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벤처투자사업을 하고 있는 송영길 부가벤처스 사장은 "많은 이들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지만 잡스와 애플의 도전과 질주에는 열광적인 찬사를 보내고 있다"며 "잡스의 기업가정신은 금융의 대혼란 속에서도 미국 경제를 지탱케 하는 원동력"이라고 전했다. 실제 애플은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로 전자산업이 공멸의 위기감에 휩싸여 있던 2001년 말,아이팟이라는 혁신적 제품을 들고나오면서 미국을 세계 IT 최강국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2007년엔 노키아의 철옹성을 깨뜨리는 아이폰을 앞세워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꿈을 불어넣는 동시에 한국 일본 중국을 잇는 수많은 부품업체들에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다.
잡스 "통념에 빠져 위험 피한다면 기회는 없다"
잡스는 또한 뛰어난 창의성과 직관력의 소유자였다. 과거와 현재,미래를 잇는 상상력은 쉴 틈이 없었다. 헝가리 철학자 아서 케슬러의 표현을 빌리면 잡스의 창의성은 '이연현상(bisociation)'에 몰입하는 여정이었다. 서로 관련이 없는 두 가지 사실이나 아이디어를 하나의 아이디어로 통합하는 것이다. 난데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식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재하면서도 아직 우리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관계,아직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관계를 창조하는 것이 잡스 필생의 과제였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이팟 아이폰이 보여준 기능이나 서비스는 예전부터 우리 일상 속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것들이었다. 음악 영화 통신 비즈니스 이 모든 것들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소트프웨어와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만들었을 뿐이다.

잡스가 기업가로서 위대한 점은 이처럼 힘겹게 배양한 창의성을 경영의 합리성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여정들을 지나는 동안 그의 몸은 자꾸만 여위어갔다. 지난해 6월엔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아이폰4를 들고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다. 세상이 알아주는 천재일지라도 정글 같은 경쟁환경이 부려놓는 혹독한 스트레스와 지루하고 고단한 불면의 시간들을 견뎌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병든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기업 혁신에 올인했던 잡스야말로 모든 기업인의 귀감"이라며 "글로벌 경제위기의 태풍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한국도 애플과의 경쟁관계를 떠나 그의 기업가정신을 다시 되새겨 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조일훈 IT모바일 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