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는 수집가의 시대였다. 진원지는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였다. 그 대표주자는 볼로냐의 명의로 이름을 날리던 울리세 알드로반디(1522~1605)로 그는 살아 있는 자연과학 백과사전을 만들겠다는 포부 아래 박제 악어,돌과 식물의 표본 등 무려 2만여점을 수집했다. 로마의 미켈레 메르카티,베네치아의 카를로 루치니,베로나의 프란체스코 칼체올라리도 코뿔소의 뿔을 비롯,희귀 동 · 식물의 표본을 잔뜩 수집했다. 수집활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학자와 애호가들이었다.

그들은 왜 이렇게 수집에 매달린 것일까. 르네상스가 중세를 지배한 신앙의 커튼을 젖히자 드넓은 미지의 세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울타리 밖으로 나온 호기심 많은 양들에게 신은 더 이상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신의 강보에 쌓여 누리던 안락한 세상은 순간 끝 모를 두려움의 수렁으로 바뀌었다.

인간은 이제 모든 지식을 자기 중심적으로 재편해야만 했다. 방법은 오직 하나. 그것은 자연에 널린 수많은 물건들을 수집해 연역적 지식의 탑을 쌓는 것이었다. 미지의 세계가 안겨주는 불안감은 수집에 대한 강박증이라는 부메랑이 돼 르네상스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것이다.

기독교가 선사한 영생의 지복을 포기한 만큼 학자들은 자연을 탐구함으로써 자신만의 신을 찾아나선다. 바야흐로 수집광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바로크 시대에 접어들면 학자와 애호가는 물론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소시민들까지 수집의 대열에 합류한다. 동인도회사를 통해 전 세계에서 진기한 물건들이 쏟아져 들어온 네덜란드는 그런 움직임이 가장 활발했던 곳이다. 현세적 세계관이 지배적이었던 이곳 시민들 치고 수집용 진열장 하나 갖추지 않은 경우는 드물었다. 그것은 자신의 고상한 기호를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집에 관한 한 평민들이 재력이 뒷받침되는 왕이나 귀족을 따를 수는 없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인물들은 광적인 수집가들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루돌프 2세 황제(1552~1612)는 수집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모아 궁궐에 쟁여둔 광적인 수집벽의 소유자였다.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1647~1656)을 지낸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1614~1662)은 회화수집에 열을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궁궐 안에 그림을 전시하기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 플랑드르 최고의 화가로 통했던 다비드 테니에르 2세(1610~1690)를 고용해 이탈리아의 회화 명작들을 모사하게 했고,이것들을 자신의 갤러리에 전시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예술품 박물관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이에게 접근이 허용된 근대적 박물관과는 다른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 한 사람을 위해 조성된 사적인 공간이었다.

테니에르 2세가 그린 '전시실을 둘러보는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은 이 광적인 수집가가 네덜란드 총독이 된 해에 그려진 것이다. 그림을 보면 검은 색 망토에 검은 모자를 쓴 대공이 베네치아에서 온 사절단들에게 자신의 수집품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실내를 가득 채운 그림은 대부분 베네치아의 화가들이 그린 것으로 절반은 거장 티치아노의 것이고 나머지 작품들도 조르조네,틴토레토,바사노,베로네세 등 베네치아 화파의 대가들이 그린 것이다. 뒤쪽에 열린 문 저편의 공간도 그림으로 가득 차 있어 그가 수집한 작품 양이 얼마나 방대한지 짐작케 한다.

한편 스페인의 바로크시대 궁정화가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의 문이 열려 있는 부분을 자신의 대표작 '라스 메니나스'에 그대로 차용해 표현했다.

테니에르 2세의 갤러리 풍경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바로크 및 로코코 시대에 쏟아진 수많은 갤러리 풍경화는 모두가 그의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속에 보이는 수집품,그것은 서구 근대인의 호기심의 산물이자,인간이 중심이 돼 세계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자 했던 근대 서구인의 강박증의 산물이다. 실내를 빽빽이 채운 그림들은 그러한 지적 강박증이 얼마나 폭넓고 뿌리 깊게 서구인들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는지 소리 없이 증언하고 있다.


◆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무소르크스키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

무소르크스키는 19세기 러시아 국민음악운동의 주도자로 슬라브 민족의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서구 고전음악의 격식을 깬 독창적인 음악을 작곡했다. '전람회의 그림'은 그의 절친한 친구로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빅토르 하르트만의 유작전을 보고 느낀 감동과 인상을 10개의 작품을 감상하는 형식으로 구성해 표현한 피아노 조곡이다. 작품과 작품 사이에는 5개의 프롬나드(promenadeㆍ산책)를 배열해 감상자가 감흥을 느끼며 전시실을 이동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생전에 별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다 그의 사후 6년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악보를 출판함으로써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특히 이 작품의 성가를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무소르크스키의 피아노 원작이 아니라 모리스 라벨의 관현악 편곡 버전이다. 오늘날 연주회장에서 들을 수 있는 곡은 대부분 라벨의 이 편곡 버전으로 프롬나드도 원곡보다 1개 줄어들었다.

특히 트럼펫 솔로로 시작되는 첫 번째 프롬나드에는 친구의 전시를 보러온 즐거움과 함께 먼저 떠난 친구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감정이 압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이 테마는 작품 내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곡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둘러보는 듯한 느낌을 마치 스케치하듯 묘사한 이 작품은 드뷔시를 비롯한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현대음악을 향한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