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은 '애플의 시대'였다. 아이폰 · 아이패드를 무기로 거침없이 정보기술(IT) 시장으로 진격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인텔 노키아 등 전통의 강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애플의 질주를 지켜봐야 했다. 신흥 강자의 파상공세에 밀려 HP는 PC사업에서 손을 떼야 했고 노키아는 패자(覇者)에서 패자(敗者)로 주저앉았다. 삼성도 위기에 직면했다. "왜 아이폰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못 내놓느냐"는 정치인의 쓴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삼성은 조용히 반격을 준비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신제품으로 애플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애플과 견줄 또 다른 신흥 강자 구글과 돈독한 동맹을 맺은 데 이어 인텔, 마이크로소프트를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얽히고 설킨 IT 강자들이 제조업에 강한 삼성을 중심으로 반(反)애플 전선을 결성하고 스마트 대전에서 대반전을 노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2007년 1월, 잡스의 혁명

스마트폰을 처음 내놓은 것은 노키아였다. 2000년대 초반 40%가 넘는 점유율로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노키아는 '심비안'이란 운영체제(OS)를 통해 스마트폰 시장 석권도 눈앞에 두는 듯했다. 그러던 2007년,세계 IT업계 판도는 일순간에 뒤바뀌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그해 1월 '아이폰'을 공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휴대폰의 개념을 다시 만들 정도의 파괴력"이라고 극찬했지만 기존 IT 강자들은 그 의미를 폄하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그해 선보인 '윈도 비스타'의 실패를 만회하느라 아이폰이 가져올 충격파를 감지하지 못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보기 좋은 새 휴대폰'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강자가 등장했다. 인터넷 검색 서비스 업체 구글은 삼성전자 LG전자 모토로라 등을 끌어들여 '안드로이드 OS' 동맹을 맺고 본격적인 휴대폰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 2008년 6월, 아이폰 돌풍

아이폰 돌풍은 놀라웠다. 애플은 2008년 6월 차세대 모델 '아이폰3'를 내놓은 직후 3분기에만 690만대를 팔아 단숨에 글로벌 톱6에 올랐다.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렸다.

위기감을 느낀 삼성전자는 그해 11월 '옴니아'를 내놓으며 뒤늦은 추격전에 합류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2009년 11월 애플은 한국에 아이폰3를 내놓으며 단숨에 스마트폰 1위 자리를 꿰찼다. '윈텔 동맹'으로 불리는 MS와 인텔도 예외는 아니었다. 애플발(發) 스마트폰 열풍 속에 PC 기반 사업에 집중하던 두 회사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작년 3월 애플은 아이패드를 내놓으며 '윈텔 동맹'에 2차 충격을 가했다.

◆ 2010년6월, 삼성의 조용한 반격

어느 누구도 애플에 맞설 엄두를 못내던 작년 초.삼성전자는 조용한 반격을 준비했다. 그해 2월 갤럭시A를 내놓은 데 이어 4개월 뒤 갤럭시S를 출시했다. "아이폰의 유일한 대항마"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태블릿PC에서도 반격을 가했다. 애플보다 7개월 늦었지만 작년 11월 갤럭시탭을 내놓았다. 애플이 올해 3월 아이패드2를 투입하자 지난 7월 갤럭시탭 10.1로 맞불을 놨다. 삼성의 거센 추격에 애플은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건희 회장은 "(애플의 소송 제기는) 튀어 나온 못을 때리려는 원리"라고 담담히 맞받았다. 반면 노키아는 패배를 선언했다. 노키아의 CEO 스테판 엘롭은 올해 2월 "우리는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냈다.


◆ 2011년 8월, IT 헤게모니 시프트

4년째 이어진 애플의 독주에 IT 강자들의 반격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구글이 첫 포문을 열었다. 지난 8월15일 모토로라 휴대폰 부문을 전격 인수했다.

나흘 뒤인 8월19일,세계 최대 PC 제조업체 HP가 PC사업과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 집중해 애플의 독주를 막아보겠다는 전략에서다.

이를 두고 이 회장은 "IT산업 주도권이 하드웨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때마침 애플 신화의 주역 잡스가 8월25일 물러나면서 경쟁사들에 대반격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 9월28일,애플 포위망 완성

반(反)애플 기류는 점점 강해지는 추세다. 그 중심에는 애플과의 특허 소송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보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뒤지지만 세계 최고의 제조 경쟁력을 자랑한다. 구글이나 MS 등 애플의 경쟁사들은 갖추지 못한 '힘'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이 모토로라 휴대폰 부문을 인수했지만 본격적인 제조에 이르기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며 "안드로이드 OS를 주도하는 구글이 삼성전자에 당분간 기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인텔과 MS도 반(反)애플을 위한 파트너로 삼성전자를 택했다. 인텔은 리눅스재단을 매개로 삼성전자와 차세대 OS를 개발하기로 했으며 MS는 삼성전자로부터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윈도폰'을 개발하기로 했다. 인텔,MS를 우군으로 만든 힘 역시 삼성전자가 지닌 제조 경쟁력에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잠재적 경쟁 상대인 구글과 MS,인텔과 삼성전자,구글과 삼성전자가 애플 타도라는 공동의 목표로 협력관계를 맺은 셈"이라며 "내년 이후 글로벌 IT 시장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구도로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