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본관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2.6t 규모의 육중한 강철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영국의 세계적인 조각가 앤서니 카로(88)가 아연 철판 등 산업 재료를 활용해 2006~2007년 제작한 '별 통로(사진)'다. 전시장의 건축미학까지 아우른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영국 프라이머리 스트럭처(primary structure · 최소한의 구조) 예술의 선두주자인 그의 작품전은 내달 30일까지 서울과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동시에 열린다.

구순을 앞둔 그는 각종 철판과 금속 재료를 용접하고 화려한 색을 입힌 조각 작업으로 관심을 끌어왔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그는 로열아카데미에서 헨리 무어(1898~1986)에게 2년간 조각을 배웠고,미국의 철 조각가 데이비드 스미스와 함께 일했다. 1987년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았으며 1998년 영국 생존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내셔널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는 등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조각작업 50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에는 추상 조각을 비롯해 대형 철재 조각,돌 조각,부조형 책상,자화상,드로잉,회화 등 50여점을 내놨다.

출품작은 아이빔,철판,철망 등 다양한 산업재료를 활용한 작품과 돌과 나무를 결합한 1990년대 말 이후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 중에서 육중한 강철 작품은 조각에 대한 그의 건축적 개념을 잘 보여준다.

그동안의 추상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구상적인 요소를 가미한 그의 2003~2004년 작 '연설자'나 '궁전'은 구체적인 인물과 건물의 구조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철판 등을 용접으로 연결하고 좌대가 아닌 바닥에 배치했다. 일정한 틀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작가답게 추상 조각의 역동성과 구상적인 상상력을 동시에 담아낸 게 흥미롭다.

2005년 작 '남쪽 통로' 역시 아연과 강철을 결합한 작품.건축적 속성에 회화적 색채를 접목한 이 작품은 미니멀리즘과 구분되는 모더니즘 조각의 전형을 보여준다.

부조 작업도 눈길을 끈다. 벽에 걸 수 있도록 한 근작 '폭스트롯(짧고 빠르며 활발한 스텝무곡)' 시리즈는 송진,섬유유리,채색된 나무들을 액자 안에 배치한 작품으로 종이 조각을 연상시킨다. 조각으로 공간을 드로잉하고 이를 건축물처럼 만드는 그의 미학이 돋보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조각의 흐름을 개척해 온 카로의 작품을 통해 시각적 모험과 예술가의 도전 정신을 탐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