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만 해도 야마하,무라마츠 등 내로라하는 플루트 제조사들의 대표는 새로 만든 악기를 들고 한 남자를 찾아갔다. 떨리는 눈빛으로 그들이 주시한 건 그 남자의 입술.그가 '후우~' 하고 숨을 불어넣고 손가락을 움직여 소리를 내본 뒤 내뱉는 한마디에 가격이 매겨지곤 했다. '전설의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72 · 사진)의 이야기다.

그가 내달 2일 예술의전당에서 10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다. 한국에 앞서 일본 투어 중인 그를 27일 도쿄 긴자 세이오호텔에서 만났다. 전날 저녁 산토리홀 공연 탓에 피곤할 법도 하지만 백발에 흰 수염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온 그는 대화 내내 호탕하게 웃었다.

"한국에 갔던 게 10년 전이라니 믿어지지 않는군요. 오랜만에 만날 한국 팬들과 매운 음식이 기다려집니다. "

그는 1978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와 레코딩한 '바흐:트리오 소나타집'을 회상하며 "굉장한 연주자다. 런던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와 함께 녹음할 때까지 그 놀라운 실력과 열정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클래식계에서 가장 바쁜 남자다. 올해만 해도 중국 일본 한국을 도는 아시아 투어에 피츠버그 댈러스 디트로이트 뉴욕 토론토 등을 도는 미국 연주 일정이 꽉 차 있다. 내년에도 취리히 캄머오케스트라와 신년콘서트,리옹국립오케스트라와 유럽 투어가 예정돼 있고 남미와 이탈리아,영국 일정도 잡혀 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소화하는 데 다소 무리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건강관리를 위해 아침에는 과일만 먹고 설탕은 피한다"고 했다.

그는 플루트 연주를 골프에 비유했다.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고 더 나아지길 바라며 연습하는 과정에서 오는 희열이 엄청나게 큰 악기라는 것."모차르트의 곡을 두 달 동안 스물일곱 번 연주한 적이 있는데 매번 다른 깨달음을 얻었어요. "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태생인 그는 아홉 살에 하모니카로 음악을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열네 살에 피아노 제작소 직공으로 취직했다. "학교나 거리에서 군악대의 음악을 들을 기회가 많았어요. 온몸으로 관악을 즐기고 배울 수 있었던 시기였죠.지금도 아일랜드 민요를 자주 연주하는데 자국 음악을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악역을 하든 웃기는 역을 하든 그의 스타일로 해석해내는 것처럼 민요와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때 크게 다를 건 없지요. "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대니 보이'를 연주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주하는 곡이고 이 곡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