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없는 의류업체 '리앤펑'…'플랫폼' 비즈로 연 18조원 매출
40여개국 8300개사 연결
200만명 '영업의 場' 마련
이우창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wclee@igm.or.kr >
플랫폼이란 '고객이나 공급업체와 같은 참여자들이 거래를 할 수 있는 마당(場)을 만들어 주고,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을 의미한다. 반드시 IT에 기반한 첨단 기업들만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류 생산업체인 리앤펑(Li & Fung)이 좋은 예다.
1906년 광저우에서 설립된 홍콩의 대표 기업 리앤펑의 주요 생산 및 판매 품목은 의류,장난감,액세서리 등이다. 2010년 매출은 약 18조원에 이른다. 세계 시장에서 이 정도 매출을 올리는 기업은 부지기수일터.하지만 비즈니스위크는 이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 29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포브스도 '아시아에서 가장 놀랄 만한 50개 기업' 중 하나로 꼽았다. 이유가 뭘까.
리앤펑은 매년 20억벌 이상의 의류를 생산하면서도 단 하나의 공장도 갖고 있지 않다. 단 한 명의 재봉사도 고용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40여개국에 있는 8300개 공급업자 및 그곳에 근무하는 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움직인다.
미국 MIT 경영대학원의 쿠수마노와 그의 제자인 가우어는 '플랫폼 리더십'이란 책에서 성공적인 플랫폼 주도 기업들이 플랫폼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던 몇 가지 요소를 밝혀냈다. 이를 바탕으로 리앤펑의 플랫폼 구축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플랫폼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업계의 관행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기술이 있어야 한다. 리앤펑은 거대한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공급자관리(SRM · Supplier Relationship Management) 시스템을 개발했다. 예컨대 미국의 의류회사가 남성용 반바지 30만벌을 주문한다고 치자.리앤펑은 옷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공장,직물기계,염료,천,재봉사 등을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지만 공급업체들을 조합해 한 달 뒤엔 완제품을 미국으로 선적할 수 있다. 단추는 중국,지퍼는 일본,실은 파키스탄에서 조달해 방글라데시에서 꿰매는 식이다.
두 번째 필요한 것은 플랫폼 주도 기업의 사업영역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는 공급업체들에 그들의 사업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다. 리앤펑은 자신의 역할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고 보았다. 지휘자도 악기를 다룰 수 있지만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않는다. 리앤펑도 맘만 먹으면 직접 제품 생산에 뛰어들 수 있지만 자신의 역할을 공급업체를 조율,전체 네트워크가 성공하게 만드는 것으로 한정지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공급자들이 참여하고 협력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공급업체들을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플랫폼 네트워크에서 이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일감을 보장해줘야 한다. 이를 '느슨한 네트워크'라고 한다. 리앤펑은 이를 위해 '30%보다 많게,그러나 70%보다는 많지 않게'란 '30/70' 규칙을 만들었다. 최대한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급업체 생산능력의 30% 이상을 활용하되 유연성 보장과 학습을 격려하기 위해 70% 이상은 요구하지 않는다.
물질의 세 가지 상태인 기체,액체,고체로 비유하자면 느슨한 네트워크의 목표는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70% 이상을 요구하는 고체 상태는 세상의 변화와 고객의 바뀌는 수요를 따라갈 수 있는 유연성이 없다. 반면에 30%에 미치지 못하는 기체 상태는 충분한 생산성을 갖추기에는 응집력이 부족하다. 리앤펑은 30/70 규칙을 활용해 공급업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플랫폼 네트워크의 규모를 빠르게 키워나갈 수 있었다.
리앤펑의 사례는 국내 기업들에도 시사점을 준다. 플랫폼에 기반한 대규모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갑'과 '을'이라는 관계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일부 희생이 따르더라도 네트워크 참여 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해줘야 한다. 이들을 지원함으로써 상생을 기반으로 산업 전반을 보다 건강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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