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직장인 K씨(41)는 지난 1일 오후 2시30분,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두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0130 박○○ 명의도용사건'에 연루돼 있어 3개월 동안 K씨 명의 계좌추적을 해야한다는 것.'다른 날을 잡아달라'고 하니 "검찰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전화녹취에 응하면 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K씨는 알려준 검찰청 홈페이지(유사한 가짜 홈페이지)에 피해접수 사실을 확인했다. 아무런 의심없이 홈페이지에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했다. 이후에도 전화를 건 검찰청 직원은 1시간 동안 녹취를 핑계로 '다른 계좌는 없느냐'는 등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이 질문에 답하느라 통화 중에 카드사에서 카드론 1000만원,현금서비스 530만원이 대출됐다는 안내문자조차 읽어볼 겨를도 없이 당했다.

사례 2."계좌이체 도중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했어요. 혹시 확인해 보시고 돈이 들어와 있으면 다시 보내주시겠어요. " 지난 22일 C씨(43)는 실수로 통장에 100만원을 입금했으니 돈을 다시 보내 달라는 낯선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C씨는 자신의 통장을 확인한 후 아무런 의심없이 100만원을 상대방이 불러준 계좌로 입금했다. 한 달 후,김씨는 통장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확인 결과 지난달 대부업체로부터 대출받은 돈 100만원에 대한 이자가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범인은 정보사냥꾼에게서 김씨의 개인정보를 산 뒤 대부업체에서 돈을 대출받아 이를 잘못 입금된 것처럼 꾸며 돈을 챙기고 대출이자도 C씨 통장에서 나가도록 해놓은 것.

카드론 대출 방식 등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눈뜨고 당하는 피해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대책이 지난달 마련됐지만 사건 발생 3일이 지나 신고하면 보상받을 길이 없어 해당 금융회사와의 소송만 늘어날 전망이다.

경찰청은 올 들어 8월까지 전화금융사기 피해 사례가 4705건(52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급증했다고 25일 발표했다. 2006년 처음 발생한 전화금융사기는 2008년을 기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법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피해사례가 다시 늘고 있다. 신종수법의 대표적인 사례가 카드론 유형.올 들어 8월까지 182건(63억원)이 접수됐다. 작년보다 발생 건수는 약 15배,피해 금액은 60배 증가했다.

카드론 대출사기는 범인이 수사기관 등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당신 이름으로 대포통장이 발행됐다'며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ARS 카드론 대출을 받는다. 신용카드 대출의 경우 ARS를 이용하면 별다른 개인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후 범인은 다시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계좌에 잘못 입금됐다'며 카드론 대출금을 범인 계좌로 이체하도록 한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