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반발 무릅쓴 손학규 '의회정치 모험'

양승태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국회 통과 유도

전례없는 대표 의사진행 발언…조용환 재판관 與 반대 넘을까

"국민으로부터 온통 손가락질 받고 불신당하고 외면당하는 정치，우리가 다시 살리자."

손학규 민주당 대표(사진)가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 직전에 한 의사진행 발언이다. 전례 없는 야당 대표의 의사진행 발언에 여야 의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한나라당이 양 대법원장 임명동의안과 조용환 헌법재판관 선출안을 연계해 표결을 늦춰온 민주당에 대법원장 동의안의 단독처리 방침을 통보하자 민주당이 반발하면서 국회가 또다시 파행을 빚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민주당은 긴급 의총을 열었다. 1시간30여분 동안 16명의 의원이 공개 발언에 나섰다. "헌법재판관 선출안을 처리해주지 않으면 대법원장 표결도 보이콧하자"는 강경파와 "표결에는 참석하자"는 온건파의 의견이 8 대 8로 팽팽했다. 순간 손 대표가 나섰다. 그는 "야당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불만도 많을 것"이라며 "전례가 없지만 직접 의사진행 발언에 나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호소하겠다"고 표결참석 쪽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본회의 의사진행 발언대에 선 손 대표는 "누구누구 신드롬,현상이니 하는 말이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회자되는 정치의 실종 상황에서 의회민주주의를 제자리에 올려놓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는 "조 후보자의 발언이 마음에 안 들고 불만이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와 소수 의견 존중의 의미로 야당에 배정된 헌법재판관의 정치적 의미를 이해해달라"며 조속한 시일 내 처리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의원들 입장에서도 불만이 많겠지만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 수장을 우리 손으로 축복 속에 임명할 수 있도록 하자"며 찬성투표를 독려했다.

약 10분간의 의사진행 발언이 끝나자 의원석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양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은 재석 245명에 찬성 227표,반대 17표,기권 1표의 압도적인 찬성 속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손 대표의 이날 결단을 두고 당내에서는 일종의 정치적 모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안철수 현상'이 여야 정치권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나름의 고심을 담은 결정이지만 이후 조 후보자의 선출안 처리 여부를 한나라당의 선의에 기대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손 대표 측 한 의원은 "야당 대표로서 통 큰 모습을 보여주는 결정이지만 여당이 조 후보자 사안을 계속 정략적 의도로 활용하면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