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전력수요 예측이 빗나가면서 15일 발생한 사상 초유의 정전 대란은 일단락됐지만 이번 사태의 발생 원인과 사후 부실대응을 둘러싼 궁금증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강제적인 단전 조치를 내릴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에서부터 정전 사태 피해보상에 대한 책임 공방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전사태와 관련한 다섯 가지 궁금증을 정리했다.

1. 1시간 46분간 침묵
순환정전 지역 예고 가능했는데…사후 대응도 '구멍'


전력거래소와 한국전력이 단계적으로 전력 공급을 끊기 시작한 것은 15일 오후 3시11분.이로부터 정전 피해 속보가 언론에 뜨기 시작한 4시10분께까지 두 기관은 물론 전력관리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조차 어떠한 공지도 하지 않았다. 전력거래소가 이메일 보도자료를 보낸 시간(오후 4시57분)을 기준으로는 1시간46분이나 정보공백 상태였다. 이 사이 시민과 공단 입주기업은 갑작스런 정전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지경부는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전력피크에 맞물린 예비전력이 비상상황 직전인 148만㎾까지 떨어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변명성 해명만 되풀이했다. 전문가들은 지역별로 30분씩 순환 정전이 이뤄진 만큼 최소한 다음 정전 지역에 대한 사전 공지는 가능했다고 말한다. 지경부와 한전이 갑작스러운 전력소비 급증으로 허둥대다 공지 의무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후 대응에 큰 구멍이 있었다는 얘기다.

2. 사전보고 했나
지경부 · 전력거래소 둘 중 한 곳은 '거짓'

전력수급 비상 사태가 발생할 때 실시되는 안정 대책은 5단계로 돼 있다. 이 중 전력거래소가 순환 정전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은 예비전력이 100만㎾ 이하로 떨어지는 '심각'단계다. 지난 15일 순환 정전이 시작된 시점의 예비전력은 148만㎾로,기준만 놓고 보면 순환 정전을 할 필요까지 없었다. 정부의 과잉대응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다.

전력거래소가 순환 정전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지경부에 사전 보고를 했느냐에 대해서는 서로의 주장이 엇갈렸다. 지경부는 전력거래소가 순환 정전 조치를 먼저 내린 뒤 지경부에 이 사실을 사후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염명천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1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정반대의 진술을 했다. 염 이사장은 "순환 정전을 실시하기 10분 전에 지경부에 알렸고 담당과장의 허가를 얻어 순환 정전 조치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지경부와 전력거래소 중 한 곳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를 밝히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3. 산업단지까지 피해
전력 차단 2순위…지역 설정에 오류


전력거래소와 한전은 순환 정전시 피해가 적은 쪽부터 단계적으로 전력 공급을 끊는다. 차단 1순위는 일반 주택과 저층 아파트,서비스업,소규모 상업상가들이다. 2순위는 고층 아파트,상업 · 업무용 빌딩,경공업 공단 등이다. 1순위 대상은 사전 예고 없이 단전을 시행할 수 있지만,2순위는 최소 1~2시간 전에 단전 예고를 해야 한다.

한전은 1순위를 중심으로 순환 정전을 실시했다고 밝혔지만 이날 2순위 대상인 산업단지와 상당수의 상업 빌딩도 피해를 입었다. 한전 관계자는 "피해가 적은 일반 주택부터 전력을 차단했지만 전력배선이 서로 겹친 지역에선 어쩔 수 없이 동시에 전기가 끊긴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경부 관계자는 "지역 순위 설정에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4. 피해 규모 얼마나
12개 産團 피해액만 수백억 달할 듯


정확한 피해액 규모는 아직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전력이 끊겼던 가구 수(전국 162만가구)만 집계된 정도다. 지경부 관계자는 "산업단지관리공단을 통해 업계 피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지만 전체 피해액을 산출하기는 어렵다"며 "대기업이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만큼 업계 전체의 피해 규모도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전국 48개 산업단지 중 12개 단지가 정전 피해를 입었다. 청주산업단지에선 340개 입주업체 중 230여개사가 정전 피해를 입어 20여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다음주께 산업단지별 피해 집계가 완료되면 피해액 규모가 수백억원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5. 한전 보상책임은
수요예측 실패 인정돼도 보상액 적어


한전은 피해보상 책임과 관련,"한전의 통제범위를 벗어나는 불가항력에 준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선긋기에 나서고 있다.

한전이 면책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전기공급약관이다. 전기공급약관 47조는 전력 수급조절을 위해 불가피하게 전기공급 중지 또는 사용을 제한할 수 있고,이 경우 긴급하거나 부득이한 경우 미리 고객에게 통지할 의무도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약관 49조는 한전의 직접적인 책임이 아니라면 전기공급을 중지하거나 제한한 경우 발생하는 고객의 손해에 대해선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한전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현행 법규상 한전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피해보상액은 정전된 시간 동안의 전기요금 3배로 제한하고 있어 피해보상액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