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동결했다. '유지'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언론들이 일제히 '동결'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물가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리라.근래에 보기 드문 큰 폭의 물가 상승을 생각한다면 금리를 올렸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외여건을 고려하면 금리 동결은 결코 무리한 선택이 아닐 것이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발 금융위기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위험으로 존재하고 있고,미국의 경기 역시 뚜렷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우리의 수출에도 이미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기준금리 동결에 반대할 수 없는 이유는 비단 대외여건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의 물가 상승이 주로 공급 측 요인 때문이라는 점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계속된 폭우로 채소값이 크게 오른 것은 물론이고,국제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공산품 가격의 상승이 추세적인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비용 상승으로 공급곡선이 좌측으로 이동해 발생하는 물가 상승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한다. 물가는 오르는데 생산은 오히려 감소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까지 올린다면 경기침체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더구나 금리 인상은 물가를 잡기보다 경제 전반의 공급 여력을 더욱 감소시켜 물가 상승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 공급 측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은 원론적으로 공급을 늘림으로써 해소해야 한다. 그런데 금리를 올리게 되면 투자가 감소해 생산 기반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물가 상승은 앞으로도 물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낳고,이러한 기대인플레이션의 상승은 실질금리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예상물가상승률을 뺀 값이다).실질금리가 떨어지면 투자가 늘어나 생산이 증가하고,이는 소득 및 소비 증가로 연결되면서 마침내 경제가 회복된다. 물가가 오르는 경우에 있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다.

1929년 시작된 세계 대공황에서도 뉴딜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물가 하락에 대한 기대가 반전되면서,바꿔 말하면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나면서 실질금리가 낮아지고 이것이 투자를 촉진해 대공황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게 되면 물가 상승의 긍정적 효과를 죽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경제 상황은 진퇴양난인 듯하다. 나갈 수도,물러설 수도 없다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노택선 < 한국외국어대·경제학 tsroh@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