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오세훈·곽노현의 추락, 왜 그랬을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곽노현 교육감에게 생긴 일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의 일이나 여당과 야당,특히 '잠룡'이라 일컬어지는 대권주자들에게 닥친 가히 변괴 수준의 재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일은 정말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일까,가슴이 서늘할 따름이다.

지난 몇 주간 일어난 일을 돌이켜 보면 자꾸만 '왜 그랬을까,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 시장은 왜 그랬을까. 승부를 걸었지만 보수의 전사로 기억되기보다는 잊혀가고 있다. 애당초 승산 없는 도전을 감행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곽 교육감은 무상급식 전투의 승리를 즐길 겨를도 없이 며칠 되지도 않아 구속되고 말았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반전이다. 만일 아무리 처지가 어려웠더라도 매정하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끝내 돈을 건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왜 이런 일들이 생긴 것일까.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가장 잦은 게 감정과 인정에 휩쓸려 범하는 실수일 것이다. 시장직을 건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오 전 시장의 입장에선 사사건건 받아들일 수 없는 굴욕을 강요했던 시의회에 맞서 단절의 대립각을 세웠던 감정정치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대중들 앞에선 절제하려 애썼지만 울분과 격정에 길을 내 주며 냉정을 잃은 흔적이 역력하다. 늘 법보다는 인간을 생각해 왔던 곽 교육감의 성품은 의리와 인정으로 상대후보 교수에게 돈을 주고 위험을 무릅쓰게 만든 원인이 됐다. 앞으로 재판을 통해 판가름나겠지만,돈을 준 게 안 하느니보다 못한 일이 되고 말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차라리 법적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냉철하게 본연의 입장을 고수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도 이른바 '안풍'이란 현상이 일어났을까. 지지율 50%라는 절호의 기회에서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뤄낸 안 교수와 박 변호사는 그 이유와 배경은 다를지라도 한국 민주주의의 역행만은 막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공유한다. 여야 공멸의 형국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했겠는가. 이 또한 정서적 현상이 아니었을까.

또 다른 안타까움은 결국 오 시장과 곽 교육감을 곤경에 빠지게 만든 의사결정들을 어찌해 막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늘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을 위해 일하는,측근과 참모,보좌관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책사들에 주목한다.

정책이나 선거,홍보 등 전문가들이 동원되거나 등용되는데 이상형은 삼국지의 제갈공명이며 핵심역량은 꾀와 재주,정국을 읽는 눈이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요즈음 그리 흔치 않은 미덕보다는 지략이 중시되는 경향이다. 그렇게 중대한 결정을 이들 측근이나 참모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고 독단으로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전개될 사태를 제대로 예측 · 전망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리더십의 유형은 다양하고 또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그 핵심은 정확한 상황판단과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이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식과 정보,상황을 토대로 국가와 사회,역사의 관점에서 최선의 결정을 도출하려면 단지 지략만 뛰어난 책사보다는 유능하면서도 공공선을 위한 헌신과 경륜,지혜를 가진 조언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조언을 듣고 편견이나 집착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지도자의 자세일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길은 없으나 격정과 아집,의리와 인정,신념에 굴하지 않고 냉철한 상황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데 조언이 미흡했거나 지도자가 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갔다. 현 시점에서 누구보다 억장이 무너지는 건 당사자들이지만,많은 사람의 삶을 좌우하는 막중한 책임을 졌던 이들의 퇴장과 그로 인한 물심양면의 손실도 결코 가벼이 볼 일은 아니다. 바라보는 우리는 한날 한때의 잘못이 이렇게 엄청난 사태를 가져온다는 사실에 등골이 시리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