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영업관리를 맡고 있는 강 부장.그는 매사에 합리적이고 매너 좋은 상사로 소문이 자자하다. 중요한 미팅이 있는 오늘 아침,그는 조금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해서 보니 빈 자리가 안 보인다. 마침 뒤쪽에서 나가는 차를 발견하고 후진을 시도하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소형차가 빈 자리로 쏙 들어가 버린다. 자칫 사고까지 날 뻔했다. 아침부터 기분이 상한 강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부하직원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평상시라면 무슨 즐거운 일 있냐며 끼어들었겠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하고 소리를 질렀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화풀이하게 된 강 부장.사건이 있고 1주일 뒤 아침,평상시와 같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직원들은 즐겁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강 부장은 지난주처럼 시끄럽다고 야단을 친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합리적이라고 소문난 강 부장.오늘은 딱히 기분 상한 일도 없었는데 왜 지난주 행동을 반복할까.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는 실험을 통해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우선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쪽은 불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비디오를 보여주고,다른 쪽 학생들에게는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비디오를 보여줬다. 시청이 끝난 뒤 주인공의 기분이 어떨지 써서 제출하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게임을 실시했다. 한 사람이 가진 돈의 일부를 나눠주겠다는 제안을 하고,다른 사람은 이 제안을 수락할지 거부할지 결정하는 게임이다. 협상이 성립하지 못하면 제안하는 쪽도 돈의 전부를 잃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나눠주는 돈의 액수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게 제안해야 한다. 이른바 '최후통첩 게임'이다.

일반적인 경우 30% 이상을 준다고 하면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런데 앞서 시청한 비디오에서 불쾌한 기분을 경험한 학생들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거절하는 경향이 더 높은 반면,즐거운 기분을 경험한 학생들은 30% 이하의 제안도 순순히 수락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감정이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험이 끝난 뒤 애리얼리 교수는 학생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다른 활동을 하면서 감정을 가라앉히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게임을 하도록 했다. 감정이 잦아들면 원래의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학생들은 감정이 사라졌음에도 격앙됐을 때의 선택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번 감정에 치우친 판단이 나중에 또다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뇌는 과거의 감정을 잊더라도,그때의 결정을 기억하고 되풀이한다는 것이 애리얼리 교수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감정에 치우친 결정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리얼리 교수는 일단 심호흡을 하고 10부터 1까지 숫자를 거꾸로 세어보라고 한다. 카운트다운은 마음의 진정에 도움이 되고,그러면 감정에 휘둘리는 결정을 하지 않을 테니까.

하버드대의 러너 교수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방법을 찾아봤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실험.제1그룹은 감정 중립적인 영상을 보고 제2그룹은 한 소년이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내용이 담긴 화를 돋우는 영상을 봤다. 두 그룹의 학생들은 영상을 보고 난 뒤에 가상의 불법행위를 저지른 피의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의재판을 실시했는데,제2그룹의 학생들이 더 가혹한 처벌을 선고했다. 그런데 러너 교수는 또 다른 제3그룹의 학생들에게도 화를 돋우는 영상을 보여줬다. 다만 영상을 보고 나서 어떤 내용을 봤는지 상세히 설명하는 과정을 추가했다. 제3그룹의 학생들도 제2그룹의 학생들처럼 피의자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렸을까. 결과는 제1그룹 쪽에 가까웠다.

상황에 대한 설명을 쓰면서 감정이 누그러지지는 않았지만,상황을 판단하는 데 더욱 객관적인 시각을 갖도록 한 것이다. 애리얼리 교수의 실험에서도 학생들이 비디오를 본 뒤 기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왜 차이가 있을까. 주인공의 감정에 대해 써보도록 했고,이는 감정에 더욱 치우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감정과 무관한 날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 격앙됐을 때 취한 행동은 두고 두고 후회할 일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기억하자.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10부터 1까지 세면서 마음을 가다듬어라.감정을 추스르기 어렵다면 상황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설명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보자.

이계평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gplee@ig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