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중 휴대전화 사용 증거 확보..고발ㆍ권고사직
"버스운전자 자질 없어" vs "사측의 불순한 의도"

강원도 원주시 한 시내버스회사가 버스 내 영상기록장치(CCTV)를 운전기사들의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증거 수집에 활용, 노무관리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휴대전화 사용이 적발돼 회사에 의해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거나 권고사직된 운전기사들은 주로 사측의 근로기준법 위반 문제를 제기하는 등 이른바 '강성' 노조원인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원주지역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는 길성호(52)씨가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으로 소속 운수회사로부터 수사기관에 고발된 것은 지난해 12월.
길씨의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건수는 지난해 4월9일부터 10월 말까지 7개월간 218건으로 하루평균 1건꼴이다.

사측으로부터 고발된 길씨는 최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문제는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시 건당 15점의 벌점이 부과되는 규정에 따라 A씨는 총 3천270점의 벌점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교통법규 위반 등으로 벌점이 1년간 121점을 초과하면 운전면허는 취소된다.

10여 년간 다른 지역 버스업체에서 일하다가 2009년 10월 이 회사로 이직한 길씨에게는 사실상 해고 조치와 다름없는 셈이다.

게다가 1년간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어 생계유지도 막막한 상황이다.

길씨와 같은 이유로 고발된 또 다른 운전기사 A(52)씨는 권고사직을 요구한 사측과의 면담 끝에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해 고발이 취하됐다.

대중교통인 시내버스 운전기사로서 시민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측의 조치가 마땅하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속사정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사측의 부당 노동행위를 고발한 노조원에 대한 보복이라는 게 A씨 등의 주장이다.

길씨는 "지난해 8월 사측의 근로기준법 위반과 부당한 연장ㆍ휴일근무 수당체계 등의 문제를 사측에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수사기관 고발했다"며 "그러자 사측은 자문 노무사를 통해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증거를 보여주며 '취하하지 않으면 운전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말했다.

길씨는 이어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한 것은 분명히 잘못한 일이지만, 사측이 CCTV로 증거자료를 은밀히 수집하는 동안 아무런 경고도 없었다"며 "사측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CCTV를 활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고, 다른 버스 운전기사들도 나와 유사한 피해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길씨처럼 수사기관에 고발되지는 않았지만, 사측으로부터 권고사직 또는 사직을 종용받았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지난해 9월 권고사직당한 B(53)씨는 "지난해 8월 노조 집행부를 통해 사측에 임금동결 문제를 강력히 항의했는데 되돌아온 것은 나와 동료 대의원들의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내역과 CCTV 증거자료였다"며 "운전면허가 취소돼 생업을 잃느니 차라리 다른 곳으로 옮겨 생업을 이어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전기사 C(56)씨는 "노조 대의원 자격으로 일했을 뿐인데 사측은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CCTV 기록을 보여주며 사직을 종용했다"며 "조용히 있으면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는 사측의 말에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회사 눈치만 보고 있다"고 밝혔다.

D(52)씨는 "시내버스 노선 운행을 하다 보면 사측으로부터 타 차량 고장에 따른 대체투입 지시 등 긴급전화를 받기도 한다"며 "사전경고 없이 CCTV 자료를 증거로 운전기사를 자르거나 협박하는 행위는 매우 부도덕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대해 해당 운수회사 한 간부는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은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운전 중 휴대전화를 상습 사용한 길씨는 대중교통 운전자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해 고발했다"고 말했다.

또 "길씨 경우를 계기로 다른 운전기사들도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하는지 살펴보려 한 것이지 노무관리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한편 도내에는 지난 8월 말 현재 762대의 시내ㆍ농어촌버스가 운행 중이며 대부분 버스 내에 영상기록장치가 장착돼 있다.

운전자와 승객 보호 등을 명목으로 수년전부터 설치되고 있는 버스 내 CCTV는 도입 초기부터 노무관리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j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