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고전기 최고의 조각가인 프락시텔레스가 코스인들로부터 아프로디테(로마에선 비너스로 불림)상을 제작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는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아프로디테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프로디테를 동시에 제작했다. 작품을 찾으러 온 코스인들은 누드상을 보고 경악했다. 오른손으로 은밀한 곳을 가리며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프로디테의 자태가 망측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미풍양속을 미덕으로 알던 코스인들은 당연히 옷을 입은 아프로디테상을 가져갔다. 누드상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은 개방적인 크니도스인들이었다. 그들은 이 눈부신 누드상을 안치하기 위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개방적인 구조의 원형 신전을 건설했다. 이곳은 순식간에 크니도스의 남성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크니도스뿐만 아니라 멀리서 이 누드상을 보기 위해 뭇 남성들이 눈에 불을 켜고 몰려들었다.

뒤늦게 누드상의 가치를 깨달은 코스의 니코메데스 왕은 크니도스가 코스에 진 엄청난 빚을 모두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누드상을 달라고 제안했다. 크니도스인들은 뜻밖에도 이 '빅딜' 제의에 코웃음을 쳤다. 그들에게 아프로디테상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던 것이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상이 인기를 끈 것은 프락시텔레스라는 거장이 제작한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 이 조각상이 당대 그리스 전역에서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프라이니라는 창부를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모든 남성들이 흠모해 마지않던 여인의 누드를 볼 수 있다니 너도나도 '불원천리'하고 달려간 것이다.

프라이니의 미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그녀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를 기리는 제의를 모독한 죄로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 재판정에 섰을 때 그녀의 눈부신 신체에 넋을 잃은 배심원들이 무죄를 선고한 데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시라.그들이 넋을 잃은 이유는 그녀의 누드가 풍기는 짙은 관능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그녀의 신체가 보여주는 완전무결한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 완벽한 신체미는 곧 신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은 프라이니의 육체에서 신의 숨결을 느꼈던 것이다.

완벽한 신체미의 이상은 8등신이었다. 신장과 머리 길이의 비율을 8 대 1로 규정한 이 비례를 고지식하게 적용하면 조각이 딱딱해질 수 밖에 없다. 초기 그리스 조각들이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규칙을 융통성 없이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한쪽 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다른 쪽 발은 약간 구부려 전체적으로 완만한 S자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크니도스인들이 선택한 아프로디테의 신체미는 바로 이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통해 보다 완벽하게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는 신상이 점차 경건한 예배 대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하나의 눈요깃감으로 변질돼가던 당시의 사회상을 말없이 보여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밀로의 비너스'도 예배가 아닌 남성의 관음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작된 혐의가 짙다. 가녀린 허리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보라.신성을 느끼기에는 너무 육감적이지 않은가.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