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주당은 29일 중의원 · 참의원 의원총회를 열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 54) 재무상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노다 신임 대표는 30일 95대 일본총리에 취임한다.

노다 신임 대표는 이날 치러진 당 대표 경선에서 "일본의 보물인 중소기업이 엔고(高)와 디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경제 정책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민생활 위주로 예산을 재편성하고 의원 정원과 공무원 인건비 삭감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그래도 재원이 부족한 경우 국민에게 부담을 지울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일본 대지진 복구비 마련과 재정 건전화를 위한 증세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노다 대표는 총리에 지명된 뒤 본격적인 당정 개편에 나서 이번 주 중 새 내각을 발족시킬 방침이다.

노다 신임 대표의 당선은 곧 '반(反)오자와 그룹'의 승리를 의미한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간사장은 가이에다 반리(海江田万里) 경제산업상을 내세워 1년 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에게 당했던 패배를 설욕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노다 신임대표와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외상 등 '7인의 사무라이'로 불리는 반오자와 세력의 칼에 또다시 치명상을 입었다. 민주당 최대 막후 실력자인 오자와 전 간사장의 정치생명이 끝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소비세 올리고 엔화가치 낮추고


노다 민주당 신임 대표는 일본 정계에서 대표적인 증세론자로 꼽힌다. 대지진 복구비용 마련과 재정건전화를 위해서는 소비세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5%인 일본 소비세를 10%까지 단계적으로 올리려고 했던 간 정부의 정책을 다시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총리가 되기 직전까지 재무상을 역임했기 때문에 추경예산 등 부흥재원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도 증세를 점치게 만드는 요인이다.

노다 신임 대표는 엔화 약세주의자이기도 하다. 엔화가 다른 주요 통화에 비해 고평가돼 있어 일본 수출기업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시각이다. 재무상으로서 엔고(高) 저지를 위한 시장개입을 주도하기도 했다. 지난 4일엔 외환시장에 4조5000억엔(60조원)을 쏟아붓는 시장개입을 단행했고,최근엔 엔고 저지를 위해 10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간 총리는 야당과 약속한 대로 자녀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등의 복지공약을 축소 또는 폐지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선거로 수장만 바뀌었을 뿐 집권세력은 동일하다"고 평가했다.

◆오자와식 파벌정치의 종말


오자와 전 간사장의 별명은 '조직을 깨고 나오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와시야(壞し屋)'다. 파벌을 움직여 기존 조직을 부수고 다시 합치는 것에 능하다는 의미다. 지난 5월 오자와는 정적이었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와 손을 잡았고,여기에 야당의 힘까지 보태 내각불신임안을 제출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여론조사 때마다 겨우 5%의 지지율에 머물던 가이에다 경제산업상이 단번에 유력 총리 후보로 부상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가이에다 경제산업상은 이런 오자와의 후광에 힘입어 이날 민주당 선거 1차투표에서 다른 4명의 후보를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마에하라 전 외상 등 결선투표 진출에 실패한 반오자와 그룹이 이번에도 대동단결함으로써 오자와의 꿈을 무너뜨렸다.

노다 내각은 일본 경제를 살려내기 위한 숱한 과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고령화 · 저출산으로 시들어가는 경제체력의 복원이나 대지진 피해 복구,원전 사고 수습,재정 건전화 등도 만만치 않은 난제다. 이런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대내외적으로 극심한 반발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노다 신임 대표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지지도가 마에하라 전 외상 등과 달리 높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최근 5년간 총리가 6명이나 교체되는 일본의 정치 풍토 속에서 노다 정권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민주당 내부적으로도 무상복지와 세금인상을 둘러싼 노선 갈등이 극심해 누가 총리가 되든 오래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