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회장 ‘한식 승부수’
'비비고' 세계를 비빌 수 있을까?
정부 차원의 한식세계화추진단까지 꾸려질 정도로 한식 세계화는 국가적 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그렇지만 거창하게 소개할만한 성공 사례는 거의 없다. 민간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한식의 해외 진출을 꾸준하게 시도해 왔지만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CJ그룹도 2005년부터 한식의 글로벌화를 줄기차게 추진해 왔다. 실제로 ‘카페소반’, ‘한쿡’ 등을 직접 해외에 내보냈다. ‘소반익스프레스’, ‘한채’, ‘사랑채’ 등 비빔밥 전문점도 운영한 경험을 갖고 있다. CJ 역시 자랑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CJ그룹은 최근 들어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희망의 불씨를 되살린 주인공은 바로 비빔밥 전문점 ‘비비고’다. 지난해 5월 론칭해 올 8월 현재 국내에 5개점과 미국·중국·싱가포르 등 해외에 3개점을 운영 중인 비비고는 글로벌 브랜드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테이크아웃 판매 6만5000개 돌파

8월 18일 오전 11시 50분쯤 비비고 광화문점은 이미 손님들도 가득 찼다. 매장은 약 80석인데, 하루 방문객 수가 5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 중 외국인이 약 20%에 달한다. 박근재 점장은 “젊은 손님들은 매장 분위기가 신선하다는 평을 주로 한다”며 “한식을 깔끔하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어필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점장은 “외국인들은 영문 설명이 잘돼 있고 입맛에 맞게 골라 먹을 수 있어 좋다는 평이 많다”고 전했다.

해외에서도 비비고는 호평을 받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웨스트우드 빌리지에 자리 잡은 비비고 미국 1호점은 식사 시간에는 늘 70여 개 좌석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데니스 태 점장은 “보통 하루에 350~400여 명의 고객들이 방문하는데 이 중 80% 이상이 현지인”이라며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돌솥비빔밥으로 먹는 동안 음식이 따뜻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외 언론도 비비고를 주목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 중 하나인 허핑턴포스트는 “미국 패스트푸드 데이(National Fast Food Day)를 맞아 비비고를 LA 지역에서 최고의 건강식 패스트푸드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럼 비비고가 한식 세계화의 성공 모델로 주목받는 비결은 뭘까. 먼저 CJ그룹 총수인 이재현 회장의 강력한 의지를 꼽을 수 있다. 이 회장은 직접 ‘비비고’라는 브랜드를 결정했을 정도로 한식 세계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한식 세계화를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을 정도다. 비비고가 CJ푸드빌의 브랜드이지만 그룹 내에서는 ‘그룹 브랜드’로 통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둘째, 치밀한 전략과 철저한 사전 준비가 통했다. 비비고는 한마디로 전략적인 브랜드로 소개할 수 있다. 세계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국내 아이돌그룹처럼 치밀한 준비 끝에 탄생했다. 메뉴는 물론 주문 방식, 인테리어까지 철저하게 외국인의 입맛과 생활 패턴을 연구하고 적용했다.

일례로 비비고를 론칭하기 전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6개월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식 메뉴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샐러드에 익숙한 서구인을 타깃으로 라이스 샐러드 ‘비비고 라이스’와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타파스(Tapas) 형태의 메뉴를 개발했다. 백미·흑미·찰보리 등으로 만든 주먹밥 형태의 밥과 숯불고기, 닭가슴살, 두부 토핑을 고객이 직접 고를 수 있는 등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세계시장에서 꼼꼼한 사전 조사 끝에 나온 방식이다.

비빔밥을 테이크아웃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만하다. 국내외 비비고의 비빔밥 테이크아웃 판매 개수가 최근 6만5000개를 돌파했다. 국내 광화문과 삼성타운점에선 35%가 테이크아웃으로 판매되고 있고, 미국 중국 등 해외에서도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나물을 최소한으로 양념, 조리해 담아 테이크아웃해도 맛과 모양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셋째, 비빔밥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 우선 들어간 재료와 조리법이 한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탄수화물과 채소(나물)가 적절하게 밸런스를 이룬 메뉴라는 것도 어필했다. 외국인들에게 건강하고 트렌디한 식문화로 접근할 수 있었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맛’이라고 칭한 발효로 만든 여러 가지 소스를 제공해 웰빙식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풍겼다. 소스로 맛을 내는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비비고 총괄 콘셉트 디렉터인 노희영 CJ그룹 브랜드 전략 고문은 “비빔밥 같은 한식은 매우 심오하면서도 재료의 정직성을 그대로 살린 건강식으로 정크푸드와 동일시되는 패스트푸드와 달리 원재료의 신선함을 살려 현장에서 빠르게 조리한 것이 특징”이라며 “비비고를 통해 건강 개념에 충실한 한식의 장점과 원하는 재료를 골라 먹는 즐거움, 그리고 빠르게 서비스하는 개념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메뉴 및 운영 시스템 표준화 성공

넷째, 표준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한식 세계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표준화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비고는 메뉴는 물론 운영 방식의 프로세스를 표준화하는데 성공했다.

비비고는 고객이 원하는 재료로 비빔밥을 고르며 계산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퀵 서비스 레스토랑(Quick Service Rest-aurant)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퀵서비스 레스토랑의 공통적인 특징은 표준화된 품질, 빠른 메뉴 제공 등이다. 비비고는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똑같은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물론 현지 특성을 최대한 반영했다. 중국 매장에선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입맛을 고려해 기존 숯불고기, 두부, 닭가슴살 등 3가지로 운영되던 토핑에 돼지 불고기를 추가했다. 싱가포르 매장에선 새로운 보양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삼계탕 메뉴를 만들었다. 미국에선 달걀 프라이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이 많아 달걀 토핑을 선보였다. 비비고에서 사용하는 나물은 취나물·도라지·표고버섯·시금치·마늘종·숙주 등 6종류인데 도라지는 미국이나 싱가포르에서 구할 수 없거나 수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브로콜리로 대체했다.

비비고는 지난해 동남아 시장의 거점으로 싱가포르 매장을 열면서 중국과 미국을 잇는 글로벌 드라이앵글 교두보를 확보했다. 2015년까지 전 세계 1000개 매장 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 지역에서는 한류의 영향으로 비빔밥을 ‘대장금식’으로 부르는 등 친근감을 갖고 있어 비비고의 선전이 예상된다.

비비고의 타깃은 최신 유행 트렌드에 민감하고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은 18~24세의 젊은 층이다. 따라서 젊은 층이 밀집해 있는 중심 상권을 공략하고 있다. 올해는 뉴욕·런던·도쿄 등에 진출하고 2013년부터는 해외 현지 업체와 제휴, 조인트벤처나 마스터 프랜차이즈 형태로 본격적인 점포 확장을 추진할 방침이다. 김의열 CJ푸드빌 대표는 “비비고를 한식의 ‘맥도날드’로 만들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대중적인 한식 레스토랑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821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