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씨(42)는 최근 자신이 들어 둔 자문형 랩 어카운트 상품의 손실률이 20%를 웃돌자 계약을 해지해 버렸다. 소수종목 집중투자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고, 하락장에서도 주식비중을 '0'까지 줄여 위험을 방어할 수 있다는 호언에 자문형 랩 상품에 가입했지만 이번 폭락장에서 큰 손실을 입자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김씨는 마땅한 손실 복구 수단이 없다는 생각에 투자금을 주식계좌에 그대로 둔 채 지수가 바닥을 찍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직접 저가 매수를 통해 손실을 만회해볼 요량에서다.

이렇게 고수익을 노린 자문형 랩 상품에서 오히려 커다른 손실을 입은 이른바 '랩 앵그리 머니'(Wrap angry money)들이 상품계약을 해지한 채 직접 투자를 고려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공모 펀드에서 큰 고통을 당한 개인 펀드자금이 '펀드런'을 일으키며 직접투자에 나선 행태가 고스란히 반복되는 것이어서 우려를 낳고 있다. 당시에도 '앵그리 머니'들이 펀드 환매 자금으로 주식 직접투자에 나섰지만 공모 펀드 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2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10대 증권사의 자문형랩 잔액은 19일 현재 7조4640억원으로 지난달 말(9조1594억원)보다 1조6954억원(18.51%) 감소했다. 삼성증권이 7100억원 줄었고,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도 각각 2000억원 이상 감소했다.

코스피지수가 이 기간 18.20% 떨어진 만큼 코스피지수 하락률 이상으로 빠진 것은 순수하게 자금이 유출됐다는 의미다. 잔액은 랩어카운트에 순유입되는 자금에다 주식평가액을 기초로 산출하는 것으로, 최근 주가 급락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자문형 랩이 집중 투자한 차(자동차)·화(화학)·정(정유) 종목의 급락으로 폭락장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자 최후 수단으로 계약을 속속 해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자금 블랙홀'로 떠올랐던 자문형 랩 열풍 선두주자 브레인투자자문도 최근 폭락장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A증권사가 집계한 모델포트폴리오에 따르면 브레인투자자문의 최근 한달 수익률은 지난 23일 기준 -22.74%로 코스피지수(-18.17%)나 다른 자문형랩 수익률보다 부진했다.

세이에셋자산운용(-8.95%), 이스타투자자문(-11.55%), 유리치투자자문(-12.31%), AK투자자문(-13.75%) 등의 자문형랩은 지수 대비 선방했지만 절반 가까운 자문형 랩들이 현재 시장보다 못 미친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이런 '랩 앵그리 머니'들이 곧바로 주식시장을 이탈하지는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폭락장 이전보다 개인 주식매수 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이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장내파생상품거래예수금 제외)은 19조7790억원으로 20조 아래로 떨어졌지만 폭락장이 시작되기 이전인 지난 1일 17조2568억원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저가 매수세를 노리기 위한 활성계좌가 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랩 해지자금이 증시를 이탈하지 않고 직접투자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증시가 'V'자 반등세를 보였던 2008년 금융위기 직후와 달리 현재는 불확실성이 짙어 지수 바닥을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인 만큼 직접투자에 나설 경우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증권사 자산컨설팅센터 관계자는 "금융위기 직후에도 '앵그리 머니'들이 직접 투자에 나섰지만 수익률은 공모 펀드를 이기지 못했다"며 "손실이 커져 랩 어카운트 계약을 해지했다면 여러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전략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용희 현대증권 펀드리서치 팀장도 "과거에는 대외변수에 의한 폭락장이 발생하면 곧바로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며 "고수익을 노리는 투기적 매매보다는 신흥국채권이나 적립식 펀드 등 안정적인 투자상품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경닷컴 변관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