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정부만의 기업이 아니라는 것을 정부와 정치권은 알아야 합니다. "

김쌍수 한전 사장(사진)이 임기 만료일(26일)을 사흘 앞둔 23일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정부의 공기업 경영개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 사장은 지난 22일 청와대와 지식경제부에 사임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기업은 후임 사장이 임명될 때까지 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김 사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자신들이 한전을 100% 핸들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한전도 엄연히 주주가 있는 회사"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이어 "나는 피소가 됐으니까 사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사임 배경을 설명한 뒤 "개인적으로 내 명예도 훼손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한전 소액주주 14명이 "최근 3년간 한전의 전기요금이 원가에 못 미쳐 회사가 약 2조8000억원의 손해를 입은 것은 김 사장이 전기요금 인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인상안은 형식적으로 한전 이사회 결정을 거쳐 지경부 산하 전기위원회로 넘기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지경부와 기획재정부 간 협의를 통해 도출되기 때문에 정부가 사실상 결정하게 된다. 김 사장으로서는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은 것이 자신의 잘못으로 전가되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불쾌해하고 있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실제로 김 사장은 2008년 취임 이후 전기요금 현실화를 계속 주장했지만 정부가 물가상승을 우려해 저지해왔다. 전기요금은 2006년 이후 원가회수율 100%를 충족시킨 적이 없다. 원가회수율이란 전기 생산을 위한 원가 대비 수익 비율을 뜻한다. 지난달 4.9% 인상된 전기요금으로도 원가회수율은 90.3%밖에 되지 않는다.

김 사장은 이와 관련,"(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다른 주주들도 피소당한 사장이 자리에 그대로 있기를 원하겠느냐"며 "후임 사장이 올 때까지 자리에 죽치고 앉아있을 필요도 없다"고 사퇴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어 "설사 관행상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맞다고 해도 지금 내가 물러나면 그 또한 새로운 관례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전 민영화 방안과 관련,지경부는 발전자회사 분리를 고수한 반면 김 사장은 재통합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정책 불협화음이 심각했다는 세간의 얘기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김 사장은 "지금까지 한전 경영을 잘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과의 불일치에 따른) 불만은 전혀 없다"며 "한전의 주인이 정부가 아닌 주주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어 사퇴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전 측은 소액주주들의 소송 제기에 대해 회사 차원의 대응은 일절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법무팀 관계자는 "사장 개인 소송으로 회사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개인 소송이기 때문에 변호사 선임 비용 등은 김 사장이 직접 부담해야 할 상황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