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 주도 佛·英·伊 석유 선점 '잰걸음'…中·러는 '난감'
카다피 정권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주요 국가들이 '포스트 카다피' 체제에 대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프랑스 영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공습을 주도했던 국가들은 시민군과의 유대를 바탕으로 내전 이후 권력 재편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태세다. 반면 리비아 사태에 신중하게 대응해왔던 미국은 개입 수위를 놓고 고민 중이다. 특히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 카다피군에 대한 NATO군의 공습에 반대했던 나라들은 서둘러 시민군 지원을 선언하며 관계 개선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원유 생산이 재개될 경우 개발권을 놓고 주요국 간의 이해다툼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프랑스 적극적 행보 주목

주요 외신들은 23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리비아 시민군을 대표하는 과도국가위원회(NTC)의 2인자인 마무드 지브릴 총리를 각각 초청,24일 잇따라 만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는 NTC 측과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리비아 내부의 질서 유지와 국정 정상화 일정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리비아 내전 발발 직후부터 NATO군의 개입을 주장했던 프랑스는 시민군에 직접 무기를 지원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시민군을 지지해왔다. NTC를 리비아의 합법정부로 제일 먼저 인정한 것도 프랑스였다. 외신들은 트리폴리 함락의 결정적 계기가 됐던 NATO군 공습을 프랑스가 주도했듯이 정권 재수립 과정에서도 프랑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지난달에야 NTC를 공식 인정한 영국은 상대적으로 처져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카다피 이후 서방 외교무대에서 프랑스가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뒤늦게 NTC와의 관계 강화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미국도 신중한 입장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어 다시 중동 사태에 개입하기가 부담스러운 데다 재정긴축 등 경제 이슈가 발등의 불인 탓이다. 따라서 미국은 카다피 퇴진 후 헌법 제정과 민주선거 등 권력이양 과정에서 NTC를 측면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반면 NATO군 공습에 반대했던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은 입장이 곤란하게 됐다. 중국과 러시아는 시민군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시민군 지지로 입장을 바꿨고,브라질도 이웃 국가들의 의견 청취에 나섰다.


◆리비아 원유 개발사업 '군침'

원유 산지 대부분을 시민군이 장악함에 따라 석유업체 사이에선 개발권 확보전이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NTC 측이 기존 계약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혀 이탈리아 에니(ENI),프랑스 토탈,오스트리아 OMV 등 내전 이전부터 활동했던 유럽 업체들이 한발 앞서 있다. 리비아 원유의 3분의 1을 수입했던 이탈리아가 가장 적극적이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이날 현지 TV 인터뷰에서 "에니 기술자들이 이미 생산 재개를 위해 리비아 현지에 도착했다"고 소개했다. 반면 시민군 측 석유회사인 아고코 대변인이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과는 정치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하자 해당 국가는 비상이 걸렸다.

다만 정유시설이 정상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설문에서 전문가들은 리비아가 내전 이전 수준인 하루 160만배럴 생산이 가능하려면 최대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원유 생산 비중이 큰 서부 시르테와 펠라지안 분지의 상당수 시설이 내전으로 파괴된 탓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피해가 적은 무르주크와 동부 시르테 지역은 이르면 1개월 내 생산 재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해영/강유현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