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당국이 납세자를 조사해 소득 탈루 등을 밝히는 과정에서 과세 증명책임을 납세자에게도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역외탈세 등 지능적인 탈세를 적발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국세청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납세자 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다 지나치게 행정 편의적인 발상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아 논란이 예상된다.

국세청과 한국조세연구원이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공정세정 포럼'에서 신호영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신고납세제도 아래서 납세순응을 확보하려면 과세절차상 증빙의 유지 · 제출에 대한 증명책임의 합리적 배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증명책임은 과세요건을 뒷받침하는 사실 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을 때 결과적으로 누가 불이익을 받게 되는가의 문제다.

국내 세법은 과세증명 주체를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납세자와 과세당국 간 다툼이 있을 경우 법원은 과세당국이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신 교수는 "판례에 따라 이뤄진 한국의 과세당국 책임주의는 납세증빙을 많이 보유 · 제출한 납세자보다 증빙을 은닉 · 파기하거나 제출을 거부하는 납세자를 우대하는 결과를 초래해 조세법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증명책임이 납세자에게 있고 소규모 납세자로서 자료 제출에 협력하는 경우에만 과세당국이 증명책임을 지고 있다. 한국 입법체계의 토대가 된 독일도 증명책임의 많은 부분을 납세자가 부담한다. 신 교수는 "성실납세자에게는 과세당국에 증명책임을 부여하고 자료 접근이 어렵거나 곤란할 경우 납세자가 협력의무를 위반하면 납세자에게 이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납세자가 증명책임을 떠안게 되면 과세 과정에서 악용될 소지가 있고 탈루소득이 없음을 납세자가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는 또 갈수록 첨단화하는 탈세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거래 정보에 대한 국세청 접근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박명호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과세인프라가 자료상,무자료 거래,현금매출 누락 등의 문제에 취약하다"며 "고액현금거래 보고자료(CTR)를 과세 목적에 활용하고 금융기관이 보유한 사업용계좌와 비사업용계좌에 대한 국세청의 접근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찬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된 금융거래 정보에 대해 과세관청의 포괄적 접근을 허용할 것을 주문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