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속보] 하나대투증권이 다른 증권회사에서 투자자들의 돈을 횡령해 징역형까지 살게 된 직원을 본사 차장으로 행세하도록 하고 이를 묵인한 사실이 드러났다.이 직원은 옮긴 직장에서도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횡령하는 등 범행을 저질렀다.하나대투 측은 “피해자는 하나대투 거래계좌를 개설하지도 않고 사기범의 개인 은행계좌에 돈을 송금해온 만큼 이는 사적거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하나대투는 피해자에 손해배상 하라”고 주문했다.

SK증권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던 임모씨는 투자자로부터 받은 자금을 횡령,사실이 드러나자 2007년 8월 사직했다.하지만 하나대투증권 지점장이던 이모씨와의 친분으로,바로 임씨가 지점장으로 있던 증권사에서 ‘차장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지점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던 임씨는 온라인 경매 업체인 A사 한국지사 재무최고책임자로 일하던 문모씨를 만나 “선물,옵션에 투자하라”고 꾀어냈다.임씨는 선물투자거래사 상담사 자격증이 정지된 것도 숨겼다.큰 수익금을 낼 수 있다는 말에 문씨는 2007년 10월부터 2008년 말까지 56억3000만여원을 투자했지만,2009년 1월 “투자금 전액을 손실했다”는 날벼락같은 통보를 받았다.고위험상품에 돈을 투자했던 임씨가 투자금의 상당액을 손실한데다,그 중 9억여원은 다른 투자자들의 수익금 지급 등으로 ‘돌려막기’했던 것.임씨는 횡령죄로 지난 2009년 징역 3년을 확정받았다.

문씨는 하나대투를 상대로 “하나대투의 정식직원이 아니더라도 하나대투와 임씨 사이에는 객관적 지휘·감독관계가 있으므로 하나대투 측에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하지만 하나대투는 “그럴 수 없다”며 문씨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의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판사 조윤신)는 결국 문씨의 손을 들어줬다.재판부는 “증권사는 지점장실과 가까운 곳에 독립된 사무실과 전화기,책상,컴퓨터 등을 제공했고,임씨가 차장으로 행세하면서 투자권유와 거래관리 등 업무를 수행하고 그 거래에 따른 수수료 중 일부를 지급받는다는 사정을 잘 알고서도 많은 투자자를 유치해 지점의 실적을 올린다는 이유로 묵인했다”고 설명했다.사실상 증권사 측에서 임씨를 지휘,감독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재판부는 다만 “돈을 하나대투 거래계좌가 아닌 임씨의 개인계좌로 돈을 넣은 점,주식거래 경험도 적지 않은 문씨가 임씨의 투자금 운용현황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은 점을 참작해 하나대투의 과실비율을 50%로 정한다”며 “15억여원을 문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