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산업지도가 재편되고 있다. 20세기형 산업 지도가 폐기되고 21세기형으로 지각변동 중이다. 이것이 금융위기가 만들어 내는 진정한 변화다. 금융위기는 경제위기로 발전하고 경제위기는 필연코 새로운 산업지도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는 아예 체계적으로 경제와 산업의 목을 조르고 있다. 그동안의 조그만 성과에 도취돼 "나눠 먹자, 뜯어 먹자, 같이 가자"며 앞선 자의 뒷다리 잡기에 안달이 나 있다.

권력이 내건 목표가 동반성장이며 공생발전이다.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성공을 처벌하는 것이며 타인의 성과를 빼앗는 반기업적 반시장적 선동에 불과하다. 금융시장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 새롭게 출현할 글로벌 경제지도에서 과연 한국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지 실로 위기감을 갖게 된다. 당장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업의 새판짜기 움직임부터 심상찮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 도요타 등은 하반기 생산을 20%나 늘릴 계획이다. 기업 간 제휴와 공격적인 해외기업 인수도 본격화됐다. 전기차에서 닛산과 미쓰비시가 제휴하고,닛산은 러시아의 최대 자동차회사 아브토비스를 인수한다.

삼성 타도를 외치는 일본 전자업계의 재편도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 역공에 이어 최근 소니와 도시바, 히타치는 휴대폰용 LCD 패널사업을 전면 통합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합집산은 다른 산업으로도 급속히 확산된다. 히타치와 미쓰비시는 에너지 및 발전사업에서,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금속은 철강에서, 후지필름과 미쓰비시상사는 제약에서 통합, 제휴,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산업은 미국의 견제와 중국의 추격으로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해 왔다. 미국의 변화는 더욱 그렇다. 애플 구글 등은 IT산업의 생태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고 있다. 전후방 IT 가치사슬의 전부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는 더욱 분명하다. 세계 특허를 쓸어담으며 대대적인 특허공세에 나서고 있는 것도 그렇고,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에 이르기까지 수직 통합을 강화하는 것도 그렇다. 사생결단식의 행군이다. 한국을 추격하고 있는 중국은 선진국 기업을 대거 인수하는 방법으로 뜀박질을 하고 있다. 지난해 188건이던 중국의 해외기업 M&A는 올해 214건에 이를 전망이다. 가전 석유화학 자동차 등 업종을 불문하고 쓸 만한 기업은 다 쓸어담는다.

일본의 부활, 미국의 적극적 공세, 중국의 추격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위기 구조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기업들의 창의와 상상력 발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이 요구된다. 그러나 국내 기업 환경은 정반대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경쟁적으로 기업과 기업가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국가의 장기적 생존 전략 등은 안중에도 없다. 세계 산업의 재편에 대비해야 할 지경부 등은 기름값을 내리겠다며 주유소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결국 한국의 산업 발전은 여기서 멈출 것인가. 이것이 한국인의 한계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