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부장판사 조경란) 심리로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LSF) 대표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열린 파기환송심 공판장.이날 유 전 대표의 변호인단은 대법원 유죄 취지 판결의 주요 근거였던 론스타의 재무자문사 씨티그룹 직원들 간의 이메일 내용을 반박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변호인단은 해당 이메일을 'This is fun(이거 재밌다)' 메일이라고 불렀다.

씨티그룹 직원이 다른 직원한테 "외환은행이 외환카드를 지원하지 않아 주가를 하락시킨 후 합병이나 공개매수할 것이다. 외환은행 집행부는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이거 재밌다"라고 쓴 내용이었다.

이달용 당시 외환은행장 직무대행은 메일 내용과 관련해 "외환은행이 론스타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 부끄럽다"고 검찰에서 진술했고,법원도 주가조작 혐의의 주요 증거로 받아들였다.

금융사 직원들이 이메일이나 전화통화에서 쓰는 말 한마디는 금융사건에서 형사 유 · 무죄나 민사 승 · 패소를 판가름나게 한다. 외국계를 중심으로 한 대형 금융사들은 보안 문제를 중시해 주요 업무내용을 개인 휴대폰으로 주고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회사 이메일이나 녹음되는 유선전화가 업무상 주요 대화수단이다. 금융사건이 터지면 수사기관이 가장 먼저 뒤지는 것도 회사 이메일과 전화 녹음 내용이다.

흥국생명과 흥국화재가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를 '부채담보부증권(CDO) 사기판매' 혐의로 지난 6월 말 고소한 사건에서도 이메일 내용이 쟁점이다. 흥국생명 등은 "2007년 골드만삭스는 'CDO가 안전하고 수익성이 높다'고 설명했지만,당시 골드만삭스 사내 메일에는 'X 같은 상품'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주장했다. CDO의 문제점을 감추고 판매한 증거라는 얘기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2007년 당시 골드만삭스의 부사장이 친구에게 "이 CDO들은 언제든 고꾸라질 수 있다. 생존자는 오직 나만 남을 것"이라고 보낸 이메일이 공개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소의 주요 근거가 됐다.

미국 JP모건체이스도 2007년 CDO를 판매하면서 당시 직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에서 사기 혐의가 드러났다. JP모건체이스는 지난 6월 총 1억5360만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SEC와 합의했다.

지난 1월 유죄 판결이 난 대한전선-도이치증권 '6초의 전쟁' 사건에서는 한국도이치증권과 도이치은행 홍콩지점 간 전화 녹취록에서 "이 매매를 하면 한국 금융당국이 우리를 귀찮게 할 것"이라는 대화 내용이 공개됐다.

키코(KIKO) 사건에서도 검찰이 사기판매 혐의를 받은 은행들의 이메일 내역이나 전화 녹취록을 압수수색했다면 위법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나왔을 수 있다는 검찰 내부의 분석도 있다.

'11 · 11 옵션쇼크' 사건에서는 피의자들이 아예 내부 규정을 어기고 이메일이나 사내전화 대신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휴대폰으로 주식 대량매도를 계획했다. 휴대폰 통화내역도 지워버렸다. 도이치은행은 이와 관련해 해당 피의자들에 대해 징계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