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5시 서울 명동예술극장 앞.광복절인 이날 수많은 인파 속에서 느닷없이 한복을 입은 한 여성이 튀어나왔다. 이 여성은 '독도'라고 쓰인 피켓을 머리 위로 들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주위에 있던 시민들은 월드컵 응원 박자처럼 박수 다섯 번을 쳐 응답했다.

시민들은 이 여성과 함께 '아름다운 독도'를 외치며 사전에 약속된 노래와 율동을 하고 5분 뒤 흩어졌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8개 주요 도시에서 이 같은 '독도사랑 플래시몹' 행사가 열렸다. 플래시몹은 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 · 장소에 모여 특정 행동을 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5000여명이 참여했다.

영남대 기계설계학과 4학년인 이현동 씨(26 · 사진)에게 이 날은 뿌듯한 시간이었다. 이씨는 독도 사랑의 노랫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지게 한 이 행사의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한 주인공이다. 그는 "플래시몹을 하기 위해 '코리아 유스'라는 모임을 만든 뒤 인터넷에 행사를 제안하는 글을 올린 게 발단이 됐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당시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학교가 있는 대구에서만 할 생각이었는데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호응하면서 순식간에 번져나갔습니다. 마치 들불이 번지는 것 같았죠.나상이(21),장보윤(21) 등 학교 후배와 의기투합해 만든 코리아 유스는 각 지역의 참가자들에게 행사 방법과 집회신고 요령 등을 설명했고,율동 강좌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가이드 역할을 했습니다. "

이씨는 '도전하지 않으면 창조할 수 없다'는 소신으로 전국 플래시몹을 밀어붙였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스리랑카 여행에서 도전과 봉사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08~2009년 이씨는 남아공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사진관을 운영했다. 흑인이 아닌 사람을 배척하는 문화가 있었지만 타고난 친화력으로 신뢰를 얻었고 곧 월 영업이익을 500만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나중에는 사진관이 흑인 주민들의 친목도모 장소가 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스리랑카 모라투와시에 갔을 때엔 분리수거,쓰레기통 설치 등 생활폐기물 배출 체계가 전혀 잡혀 있지 않은 모습을 보고 시스템을 고안,시청에 건의했다. 시청은 이씨가 낸 아이디어의 일부를 정식으로 채택해 시행했다. 그는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눈을 질끈 감고 도전해 보니 이룰 수 있는 일이 많았다"며 "이때의 경험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을 줘 전국 플래시몹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사회적 기업가가 되는 게 꿈이다. 그는 "빈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며 "공정 무역을 통해 이런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