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방문에 한 세기…독립투사 이동휘 선생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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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롤리타·강이고르 씨 남매 "한국은 '마음의 뿌리' 잊지 않아"
"모국에 처음 왔지만 우리의 고향,우리의 뿌리가 여기라는 점을 항상 잊지 않았다. "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의 외증손녀 강롤리타(46),외증손자 강이고르 씨(45) 남매는 14일 서울 서머셋팰리스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외증조할아버지와 고국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들은 임시정부 국무총리 취임식 관련 자료와 사진,국내외의 세세한 보도 내용 등 선생에 관한 스크랩을 한보따리 준비해 와 풀어놓았다. 그러면서 남매는 "외증조할아버지의 얼굴을 뵙지는 못했으나 조국 독립을 위해 힘썼고,일본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고 들었다"며 "큰 업적을 남겨서 후손으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살고 있는 이들은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11일 모국을 찾았다.
이동휘 선생은 1873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 경성무관학교에서 공부한 뒤 강화진위대장으로 활동했다. 1907년 일제에 의한 군대해산 무렵 강화도에서 의병항쟁을 했고,안창호 선생 등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했으며 헤이그 밀사 사건에 관련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렀다. 1913년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으며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및 군무총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국민대표회 집행위원과 국민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다가 1935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작고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선생은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남겼다. 아들(이영일 씨)은 1937년 옛 소련 스탈린 정권에 의해 우크라이나로 강제 이주했으며 세 딸은 중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선생의 아들인 이영일 씨가 강씨 남매에게는 외할아버지가 된다. 강롤리타 씨는 "아버지 어머니 가족들이 강제 이주당해 중앙아시아로 왔을 때 집도 없어 움막에서 생활하는 등 고초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외할아버지는 부친인 이동휘 할아버지의 활약상에 대해 거의 매일 딸인 우리 어머니에게 글로 써서 전해주었다"며 "때문에 우리도 그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이고르 씨는 "외증조할아버지는 매우 자상한 성격에 많이 배운 천재였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선생의 다른 후손들과 교류 여부에 대해 이들은 "외증조할아버지의 딸들이 중국에 갔는데 그 중 한 분의 후손이 상하이에 살고 있고 편지 왕래가 있지만 다른 후손들에 관해서는 전혀 몰라 아쉽다"고 말했다.
이들 남매는 "옛 소련 시절엔 한국에 대해 제대로 몰랐으나 이제는 카자흐스탄의 웬만한 도시에 코리아타운이 생겼고,알마티에는 한국 교회가 들어섰으며 한국의 거리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포들의 교류가 활발하고 동포 신문도 발행되고 있어 이제 모국에 관한 소식을 늘 접한다"고 소개했다. 또 "고국이 발전돼 감동을 받았고 너무 좋다"며 "앞으로도 한국 정부가 해외에 있는 후손들을 적극 찾아,초청행사를 지속함으로써 모국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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