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밤 11시50분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7번 출구 앞.비가 내렸지만 광복절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이라 거리엔 귀가를 위해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나다니는 택시는 많았지만 한 번에 택시를 잡는 이가 드물었다. 빈차를 알리는 빨간 표시등이 켜 있는 택시들도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택시기사들이 창문을 조금 열고 행선지를 물어본 후 그냥 지나치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목동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던 기자 역시 이날 승차거부를 10번 넘게 당하며 한 시간여를 기다려서야 간신히 택시를 잡았다.

택시 승차거부는 택시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가장 큰 불편사항이자 택시업계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120다산콜센터에 접수된 교통불편신고의 70%가량이 택시와 관련돼 있으며 이 가운데 63.5%인 1만5165건이 승차거부와 불친절에 대한 민원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145명의 인력을 투입해 승차거부 집중 단속 활동을 펼치고 있다. 승차거부 적발 건수는 올 1월부터 5월까지 1728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난해보다 늘어난 수치다. 승차거부로 적발되면 1회는 과태료 20만원이 부과되고 총 4회 적발 시 택시 운행 자격이 취소되지만 여전히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승차거부와 불친절 관련 민원은 2009년 1만3335건에서 지난해엔 1만5165건으로 14% 증가했다.

서울시의 단속 및 제재에도 불구하고 택시 승차거부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날 밤 기자를 태워준 택시기사는 "(승객을 골라 태우지 않고서는) 하루에 10만원 정도인 사납금(社納金)을 채우고 나면 손에 쥐는 게 없다"며 "승객들한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승객들의 행선지도 택시들이 승객을 가려 태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또 다른 기사는 "예컨대 강남에서 목동으로 가면 요금은 1만원 넘게 나오지만 목동이 주거지라 다른 곳으로 가는 승객을 찾기 어렵다"며 "이 때문에 기사들이 강남에서 목동으로는 잘 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베테랑 기사들은 한 달에 300만원 넘게 벌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사들은 사납금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월 수입이 100만원 조금 넘는다"고 토로했다. 사납금 제도에다 적은 월 수입 같은,기사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승차거부를 부추긴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택시 사납금제를 폐지하고 부분 월급제인 운송수입금 전액 관리제를 정착시키는 등 택시기사의 처우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을 지난달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20년 넘게 택시를 몬 서종연 씨는 "이번 대책은 공무원들이 현장을 전혀 모르고 책상 앞에서 세운 계획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뜩이나 업계 상황이 어려워 문을 닫는 택시업체도 많은데 사납금을 폐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택시기사 A씨는 "지금 차고에 세워진 택시가 우리회사에만 수십대가 넘는다"며 "이런 와중에 업체들이 사납금 제도를 폐지할 것이라고 기대도 않는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