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美 "일단 불안 잠재우자"
벼랑 끝 美 "일단 불안 잠재우자"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고민 끝에 제로금리 정책을 내놨다. 연 0~0.25%인 기준금리 기조를 2013년 중반까지 2년 연장키로 했다. 다목적 속셈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강력한 경기부양 의지를 보여줘 시장의 불안 심리부터 잠재우자는 의도가 짙다. 시장에서는 FRB가 3차 양적완화 가능성을 열어놨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왜 장기 제로금리 정책을 선택했나

버냉키 FRB 의장은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그해 12월 기준금리를 연 0~0.25%로 인하했다.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경기부양 수단이었다. 기준금리를 내려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얼어붙은 자금시장을 녹이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시중에서 국채와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증권을 사들여 1조7000억달러를 공급한 1차 양적완화에 곁들인 통화정책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해 8월 물가하락과 함께 경기가 둔화되는 디플레이션 조짐을 보였다. 버냉키는 제로 수준인 기준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자 6000억달러를 더 푸는 2차 양적완화로 대응했다. 한꺼번에 풀린 돈은 달러가치의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더 큰문제는 미국 경제가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 우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통화정책을 결정하는 FRB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이날 향후 경기하방 리스크가 증가했다면서 향후 몇 분기에 걸쳐 경기 회복이 더욱 둔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상당 기간' 유지한다고 밝혀온 제로금리 기조를 2013년 중반까지 연장한 배경이다. 뒤집어 해석하면 2013년까지 경기가 만족할 만큼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3차 양적완화 카드는 완전히 접었나

이날 FOMC 발표문은 3차 양적완화를 언급하거나 시사하지 않았다. 다만 경기 전망을 봐가면서 필요할 경우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명시했다. 오는 26일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이는 와이오밍주 잭슨홀 콘퍼런스에서 버냉키 의장의 경기진단 및 통화정책 관련 연설내용이 주목되는 이유다. 그때까지 경기지표가 악화되고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지 못할 경우 3차 양적완화를 실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FOMC 회의에서 10명의 위원 중 3명이 제로금리 기간 연장에 반대표를 던진 대목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2년 이후 통화정책 결정에서 가장 많은 반대표가 나온 것이다. 가능한 한 합의로 결정하는 회의라는 점에서 일부 위원들이 버냉키 의장을 불신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이런 매파들의 반대를 극복한 것은 버냉키 의장의 추가 경기부양 의지가 강력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월가 관계자들은 "버냉키가 제로금리 기조를 연장한 정책은 '번트' 정도이고 잭슨홀에서 다른 큰 스윙(정책)을 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