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의 '월요전망대'] 외화 유동성, 이번엔 문제 없을까
글로벌 금융시장이 휘청거리면서 한국의 외화자금 사정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은 국제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서 위기를 맞았던 트라우마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을 때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우고 국내 은행 등에 빌려줬던 달러를 회수해 가면서 그해 말까지 500억달러가 유출됐다. 서울 외환시장에 달러의 씨가 마른 데다 신규 차입이 끊겨 한국은 사실상 외화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을 풀고 한 · 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덕에 외화유동성 위기는 겨우 진정됐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지난 5일 "외화유동성 문제는 잘못되면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지난달 말엔 은행들에 비상 시 외화조달 계획을 내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외화유동성에 대한 김 위원장의 우려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8월부터 시행된 외화건전성부담금(일명 은행세)과 상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은행세란 은행(외은지점 포함)의 장단기 외화차입금의 일부를 떼어내 기금을 만드는 것으로,불필요하게 외화를 차입하지 말라는 것이 본래 취지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 충격이 오더라도 견딜 수 있을 만큼 외화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으라는 김 위원장의 주문과 정면 배치된다. 김 위원장은 외환위기 때,신용카드 사태 때,글로벌 금융위기 때 등 세 번에 걸쳐 은행에 속았다고 하지만 은행 관계자들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제팔 제각각 흔들기'에 갈피를 못 잡겠다"고 말한다.

전 세계 주가폭락에 이어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으로 외국인 자금의 이탈 여부 및 환율 동향이 이번주 최대 관심사가 될 것 같다. 외국인 시각에선 비(非)안전자산인 원화자산을 팔 수밖에 없고,신흥국 중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을 매도 1순위에 올려 놓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주 중 환율이 한 차례 더 요동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책 중에선 11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이 주목거리다. 현재 연 3.25%인 한은 기준금리는 물가불안 때문에 이번달 연 3.5%로 인상될 것이란 전망이 지난주 초반까지 우세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 충격에다 향후 성장률 둔화 전망까지 겹쳐 나오면서 동결 전망이 더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 상황이 좋을 때 더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은 책임론도 함께 불거지고 있다.

이번주엔 스태그플레이션 논쟁도 거세질 전망이다. 7월 생산자물가와 7월 수입물가가 9일과 12일에 각각 발표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와 수입물가는 지난 6월 각각 6.2%와 10.5% 상승(전년 동월 대비)해 여전히 높은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10일엔 7월 고용동향이 나온다. 6월에 취업자 수가 1년 전에 비해 47만2000명 늘어 11개월 내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만약 고용 호조가 이어진다면 경기에 대한 걱정이 다소 수그러들겠지만,다시 악화되는 것으로 나오면 경기 우려가 증폭될 공산이 크다.

기관투자가들은 11일 물가연동국고채 활성화 방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거래가 늘어날 수 있도록 유동성을 늘리는 쪽으로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준동 경제부 차장 / 금융팀장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