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깁슨은 1984년 발표한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에서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내놓는다. 소설에서 이 단어는 현실과 연결된 가상의 공간을 뜻한다. 사람들은 데이터와 네트워크로 구성된 무한한 공간을 넘나들며 살아간다. 윌리엄 깁슨은 이 소설에서 보여준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장대한 서사 덕에 '사이버펑크' 소설의 효시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윌리엄 깁슨이 그린 사이버스페이스는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현실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네트워크와 현실이 밀접하게 연결될수록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현실에 더 많은 위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네트워크 상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그리고 어떻게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됐는지를 정리했다.

◆1970년대:호루라기로 전화망 마비

해킹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미국의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모형 기차 제작 동아리에서였다. 전기 기차,트랙,스위치들을 보다 빠르게 조작(hack)한다는 데서 유래됐다. 이 가운데 몇 명이 기차 제어 시스템에서 교내 컴퓨터 시스템으로 관심을 바꿨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것들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967년 미국에서 정부와 군 관련기관만 사용할 수 있었던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넷이 제안됐고 1969년에는 알파넷의 상용버전인 텔넷이 개발돼 일반인들도 데이터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1970년대에는 전화망을 무료로 이용하는 '프리킹'이 유행했다. 조 인그레시아라는 사람이 우연히 전화를 거는 도중에 휘파람을 불자 자동응답장치가 멈춘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이를 이용해 전화 교환기망을 조작해 어디로든 무료로 전화를 걸 수 있었다.

◆1980년대:PC와 함께 해커 증가

IBM은 1981년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저장장치,소프트웨어가 장착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개인용 컴퓨터 'PC'를 내놓는다. 개인이 컴퓨터를 가질 수 있게 되면서 컴퓨터 해킹으로의 급속환 전환이 시작됐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1983년에는 해커를 주제로 한 영화 '워게임즈'가 나오고 1984년에는 사이버스페이스를 그린 뉴로맨서가 발표됐다.

컴퓨터에 보급과 네트워크가 증가하면서 이를 이용한 범죄도 늘어났다. 코넬대 대학원생이던 로버트 모리스는 알파넷을 통해 자기 복제웜을 퍼뜨렸고 컴퓨터 6000여대가 감염됐다. 정부 및 대학교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미 국방부는 1988년 카네기 멜론 대학에 컴퓨터 비상 대응팀(CERT)을 만들었다. 이듬해에는 서독의 해커들이 미국 정부 및 기업 컴퓨터에 침입해 운영체제 소스 코드를 소련의 정보기관인 KGB에 판매한 혐의로 체포된 사건도 일어났다. 정부,기업 컴퓨터에 대한 침입이 증가하자 1986년 미 의회는 해킹을 범죄로 규정했다.

◆1990년대:해커는 범죄자?

해킹이 본격화된 시기는 웹브라우저가 개발 · 보급된 1990년대다. 1994년 넷스케이프가 나오자 해커들은 BBS를 떠나 웹사이트에서 노하우와 해킹 툴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신용카드 번호를 탈취하거나 군 기밀을 빼돌리는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원래 컴퓨터 전문가 혹은 보안 전문가를 일컫던 해커라는 단어는 컴퓨터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란 인식이 점차 퍼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된 1990년대 후반에는 초보자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해킹툴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 같은 해킹툴로 간단한 해킹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스크립트 키디(script kiddie)'라고 부른다. 1997년에는 아메리카온라인(AOL) 침입을 목적으로 만든 해킹툴이 공개돼 수백만의 AOL 사용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2000년대:디도스와 개인정보유출

새천년이 시작되고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았던 2000년 2월,아마존 이베이 야후 등 대형 사이트들이 짧은 시간에 집중적인 트래픽이 몰려 다운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취약한 서버에 악성 코드를 심어 정해진 시간에 목표 사이트에 많은 양의 트래픽을 몰리도록 해 다운되도록 만드는 수법이다.

네트워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끊임없이 늘어나면서 각 개인의 정보가 중요해졌다. 주민등록번호가 개인인증의 중요한 수단으로 쓰이는 국내에서 이 같은 경향이 더 강하다. GS칼텍스와 옥션,현대캐피탈에 이어 최근 네이트 · 싸이월드 등의 해킹으로 개인정보가 빠져 나가는 사태도 일상화됐다. 해외에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네트워크(PSN)이 해킹당해 7700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해킹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집단도 등장했다. 올해 초 나타난 어나니머스와 룰즈섹은 해킹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지지 세력을 모으는 등 정치적 세력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