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회복 불씨 꺼뜨릴 수 없다"…일본, 엔화 대방출 '엔高 저지'
일본 정부가 엔고(高 · 엔화 가치 상승) 저지를 위해 칼을 빼들었다. 시장에 개입하는 동시에 시중에 통화량을 늘리는 '쌍칼'이다. 엔고를 방치하다가는 대지진 이후 겨우 살아나기 시작한 경제회복의 불씨를 자칫 꺼뜨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달러당 76엔 선이 무너지면 개입할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 등 엔고 압박 요인이 만만찮다는 점에서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경제에 워낙 불확실성이 많아 시장개입의 효과가 어느 정도 지속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돈 풀어 환율 잡는다

일본 정부의 시장개입은 4일 오전 10시께 시작됐다. 엔화를 외환시장에 던지고 달러를 사들였다.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구두개입'을 한 지 이틀 만이다. 조만간 터질 대형 악재를 염두에 뒀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우려가 대표적이다.

가뜩이나 엔화에 자금이 몰리는 판에 미국의 신용등급마저 훼손되면 엔고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최근엔 유로존마저 비상이다. 이런 악재가 터지기 전에 미리 시장에 '경고장'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 정부는 시장개입 하나만으로는 강력한 엔고 추세를 꺾기에 부족하다고 판단,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을 동원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행은 이날 시장개입과 별도로 금융완화책을 발표했다. 국채 등의 매입 한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시중 유동성을 늘리는 조치다.

◆일본 기업들 경쟁력 뚝

일본 기업은 요즘 지나친 엔고로 수출 전선에서 고전하고 있다. 경쟁국들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전자와 자동차산업 등이 직격탄을 맞았다. 닛산자동차의 경우 엔화가치가 1엔 오르면 영업이익이 200억엔 줄어든다. 살아남기 위해 일본 내 생산을 줄이는 기업도 늘어났다. '산업공동화' 진행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일본 정부가 4개월반 만에 다시 칼을 빼든 이유다.

이번엔 엔고가 수그러들까. 시장 반응은 아직 '글쎄'에 가깝다. 무엇보다 미국이 문제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미국 정부는 양적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달러가 시장에 넘쳐날 공산이 커진 것이다.

일본 금융권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은 대부분 올해 사업계획을 짤 때 환율 마지노선을 80엔대 초반으로 잡았다"며 "일본 정부도 이 정도까지 환율을 올리고 싶겠지만 가능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