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재난사고'에 비싼 수업료만 낼 것인가
이제 하는 수 없다. 망치와 밧줄,손전등과 소화기를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아니 구명조끼와 구명보트,소형 낙하산,떠올리기조차 싫지만 방사선 측정기까지 장만해야 하나. 너무 수선을 떠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최근 몇 년간 우리가 겪은 일들을 떠올리면 결코 무리한 얘기가 아니다. 도무지 마음 놓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누구를 따를지 알 수 없다. 이미 겪은 재난들이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정부를 믿고 싶지만 기억에는 실망과 좌절,뭐 그런 허탈한 느낌만 남아 있을 뿐이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믿고 의지할 데가 없다. 그야말로 실존의 위기,과언이 아니다.

기후변화란 말,지구 온난화란 말조차 어조 완화가 너무 심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었고 또 앞으로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그 두려운 재난들을 기상이변이라 부르는 것조차 너무 중립적이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그런 험난한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인정하자.이미 겪은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상이변은 어느덧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 됐다. 언제라도 결국 목숨과 안전을 각자가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위험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하는 까닭이다.

상황이 끝났다고 볼 수 있는지 아직은 모르지만,늘 번번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갖가지 정부의 실수와 잘못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재난경보 문자메시지를 보냈느니 받지 못했느니,산림청과 서초구청이 옥신각신 면피논쟁을 벌이는 정말 어이없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누구 말을 믿을지 고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천재인지 인재인지,아니면 두 가지가 복합된 것인지 이젠 궁금하지도 않다. 책임의 소재는,피해자들이 집단소송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등 민감한 부분이 있어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결국 밝혀질 것이고 또 밝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은 앞으로 과연 안심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해온 정부가 답변해야 할 근본적인 물음이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장이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어느 곳이 안전지대인지,사회기반구조나 공공시설은 믿을 만한지,정부가 보장해야 할 삶의 안전 조건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가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기상이변과 재난에 대한 진단과 전망,특정지역이 아닌 국토 전체에 대한 안전진단과 대책,위험과 재난에서 살아남는 방법 등도 정부의 책임 있는 답변이 필요한 질문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항목들이다.

실수는 범할 수도 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뻔히 알면서도 당했다. 값비싼 수업료를 계속 치르고 있다. 정부의 대책이 증거와 과학에 기반을 둔 정책이 아니라 사고와 재난 기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온갖 대책과 안전보장을 내놓고 나서도 일단 상황이 끝나면 슬그머니 손을 터는 일이 많았다. 과거라면 몰라도 과학적 지식과 예측능력이 모자라서 그랬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과학자와 전문가들을 육성하고 그들이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은 해마다 반복되는 삶의 한 부분이 됐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시시각각 위험을 무릅쓰고 부딪치며 살아가야 한다. 과연 위험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것을 개인에게 돌리기에는 너무나 큰 부담이고 위험한 문제다. 정부의 존재이유는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정부가 그 존재이유를 증명하는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고 수습과 복구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부의 책임 있는 진단과 응답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