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전' 일단락..보즈워스 재방북 통한 후속대화 주목
'북미-남북 병행' 가능성..양자ㆍ다자접촉 활발해질 듯

한반도 정세의 풍향을 가늠해볼 무대였던 북미대화가 29일(현지시각) 막을 내렸다.

1년7개월만에 공식 대좌한 양측은 이렇다할 구체적 성과를 도출해내기 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대화재개의 공감대를 구축하는 선에서 첫 접촉을 매듭지었다.

일종의 '탐색전'이 끝난 셈이다.

앞으로의 국면은 6자회담 재개로 급진전하기 보다는 각국이 북미대화의 결과를 평가ㆍ조율하고 다양한 접촉과정을 통해 6자회담 재개의 조건과 형식에 관한 교집합을 형성해나가는 '예열기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대화의 결과는 예견된 측면이 강했다.

대화국면의 신호탄을 올렸다는 상징성은 있었으나 1년7개월의 공백기를 거쳐 대화테이블에 앉은 북ㆍ미 양측으로서는 서로의 '생각'을 확인해보는 것이 최우선 순위였다.

미국 측이 이번 대화의 성격을 "예비회담"이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양측이 이번 대화를 평가하며 "건설적이고 실무적이었다"는 외교적 수사를 쓴 것은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확인한 것 자체가 후속대화를 이어가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라는게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주목할 점은 앞으로의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양측이 어느 정도의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했는지이다.

최대 쟁점인 북한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을 놓고는 양측이 첨예한 입장차를 드러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UEP가 9.19 공동성명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1718, 1874호)를 위배하는 것이라며 6자회담 재개에 앞서 프로그램의 중단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이를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며 반대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이어 서로의 어젠다를 꺼내 대립각을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측은 비핵화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사전조치로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9.19 공동성명 이행 확약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의 임시 중지를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북한은 평화협정과 북미관계 정상화, 제재해제 등 '고유 어젠다'를 다시한번 제기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북미대화 과정에서는 우리 정부도 간접적인 형태로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측 6자회담 차석대표인 외교통상부 조현동 북핵외교기획단장이 급파돼 한ㆍ미간 긴밀한 조율작업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입장이 미국을 통해 북측에 전달됐고 이는 북미대화의 내용과 결과에도 일정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모처럼 대화의 실마리를 잡은 양측이 단순히 '빈손'으로 북미대화를 끝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후속대화에서 의미있는 진전을 이뤄내기 위한 타협의 여지와 공간을 확보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비핵화 이슈를 놓고는 북한측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와 같은 상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뜻을 내비쳤을 개연성이 있다.

최소한의 '성의표시'로 대화의 동력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북 식량지원은 '드러나지 않은' 핵심의제로서, 양측이 일정한 접점을 찾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엄격한 분배모니터링 등 미국이 그동안 요구해온 식량지원 전제조건을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이며 미국은 그에 따라 조만간 시기와 규모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북ㆍ미간 첫 접촉이 매듭됨에 따라 앞으로의 정세 흐름은 북미간 후속대화를 중심으로 6자회담 관련국들간에 다양한 양자ㆍ다자접촉이 전개되는 국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차적으로는 북미대화 결과에 대한 각국의 평가가 이뤄지고 이를 토대로 한ㆍ미 또는 한ㆍ미ㆍ일, 한ㆍ러, 북ㆍ중, 북ㆍ러 등 다양한 조합의 외교적 교섭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북미간 후속대화의 방향과 북미-남북대화의 병행 여부, 6자회담 재개 시기와 속도 등의 이 같은 교섭의 핵심의제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대 관전포인트는 북미 후속대화다.

외교가에서는 우선 '예비회담' 성격의 북미대화가 마무리된 만큼 앞으로 한두 차례에 걸쳐 '본회담' 성격의 후속대화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표가 평양을 방문하는 식의 교차방문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북측은 이번 대화에서 보즈워스 대표를 평양에 초청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6자회담으로 가는 중요한 '징검다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남북대화의 병행 개최 여부도 중요한 변수다.

앞으로의 국면이 북미대화 쪽으로 과도한 쏠림을 보일 경우 국내적으로 '통미봉남' 우려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외교역량은 북미-남북대화의 병행을 이끌어내는 쪽에 맞춰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관련국과의 외교교섭을 통한 '우회적 압박'을 시도하는 것은 물론 8.15를 계기로 북한에 중대한 메시지를 던지며 태도변화를 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주목할 점은 미국 측이 이번 대화에서 북한에게 남북대화를 계속하라는 메시지를 제시했을 가능성이 큰 점이다.

북측은 남북대화를 우회해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계속하고 싶어하지만 미국의 '의지'를 확인할 경우 대화의 장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미국도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 앞으로 한미공조를 유지해나가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정세흐름의 관건은 만남의 '횟수'나 '형식'보다도 '내용'이 될 것이라는게 보다 지배적인 분석이다.

북한이 일정한 비핵화의 의지를 구체적 행동으로 보야 전체 국면이 진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공이 북한으로 넘어가 있다"고 말했다.

현단계에서는 북한 UEP 문제를 중심으로 북미간에 가파른 전선이 형성돼있으나 북한의 성의표시 여하에 따라서는 상황이 급진전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남북과 북미대화를 병행하며 다양한 탐색과 접촉과정을 거칠 경우 9∼10월께에는 6자회담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중ㆍ일ㆍ러의 입장도 중요한 변수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남북, 북미대화로 절차적 요건이 해소됐다고 보고 6자회담 조기 재개 쪽으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있다.

다만 북미대화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재개의 시기를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중국과 보조를 맞춰 6자회담 조기 재개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도 일정한 비핵화 조치를 주문하는 '중간자'적 입장에 놓여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조만간 러시아를 방문해 향후 정세운용에 대한 의견을 조율할 예정이다.

일본은 한ㆍ미ㆍ일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관심사인 북ㆍ일대화 추진을 적극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대화를 신호탄으로 큰 틀의 대화국면에 진입한 8월의 한반도 정세는 당분간 외교적 교섭활동을 축으로 하는 탐색과정을 거치며 '대전환기'를 예비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정묘정 기자 rhd@yna.co.krmy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