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여명의 관객이 3층 객석 끝까지 가득 메운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나는 가수다'로 급부상한 임재범은 25일 저녁 '다시 태어난 거인' 콘서트 무대에서 야인처럼 살아온 그동안의 인생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한과 응어리를 마음껏 토해냈다.

호랑이 그림이 새겨진 재킷을 입고 등장한 그는 포효하는 야생 호랑이처럼 무대를 휘저었다.

첫 무대는 '나는 가수다'의 에필로그처럼 시작됐다. 그는 북소리가 둥둥 울리는 가운데 남진의 '빈잔'을 뮤지컬 배우 출신 가수 차지연과 함께 열창했다.

"졸지에 '나는 가수다'에 나가게 됐는데 저를 모르던 분들까지 알게 됐고 그 힘을 느꼈어요. 사고뭉치,방송 펑크,사람 두들겨 패는 사람으로 소문났죠.물론 패긴 팼어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절 팼죠.그래서 뼈도 부러졌고 스트레스 조절을 못해 맹장이 터져 수술을 받으며 넉 달간 소리내지 말라는 진단을 받았죠.큰 영광을 받는 게 적응이 안됐어요. 지수(딸)를 데리고 서울대공원에 다니던 시절이 그립게 됐습니다. "

솔로 1집 이후 세간의 관심을 피해 오대산에 칩거했던 것처럼 그는 '나가수'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이 무대도 '나는 가수다' 같고 지금도 청중평가단 앞에서 노래하는 기분이지만 내 나이 쉰이고 여기서도 난 지수 아빠다. 여러분과 내가 다를 게 뭐가 있나. 지금 무대가 객석보다 높지만 오히려 여러분은 나보다 더 위에 있다"며 특유의 화법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이어 기타 한 대로 부른 '사랑'과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등으로 깊은 울림을 줬다. 이글스의 '데스페라도(Desperado)'와 에릭 카멘의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를 부를 때에도 그만의 진가를 발휘했다.

'올 바이 마이셀프'를 부르기 전에는 "이 노래를 부르며 많이 울었다"며 "힘든 가정 환경,무심한 부모 때문에 상처받으며 혼자한 지난 세월이 야속한 때가 많았다. 하지만 신께서 고통을 줄 때는 기회를 준 거란 걸 알았다. 여러분도 힘들고 어렵겠지만 오늘이 현실의 고통이 없어지는 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부는 록 무대로 장식했다. 징이 박힌 재킷을 입고 나온 그는 후배 밴드 디아블로와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 등을 노래했다. 그가 강렬한 눈빛과 목소리로 절규하자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해 두 손을 올리고 뛰기 시작했다. 그는 흥에 겨워 머리에 물을 붓고 상의를 벗어 문신이 그려진 몸을 보여주기도 했다.

간간이 터져나온 유쾌한 입담도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그는 이덕화,이대근,고(故) 이주일,로버트 드 니로 등의 성대모사로 박수를 받았고 "난 도시락 특공대인 방위 출신이다" "지수야,사랑한다. 아빠가 여러분 사이에서 노래하는 거 잘 보고 있어"란 말로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축가를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다"며 결혼을 앞둔 관객에게 축가를 불러주는 친근함도 보였다.

후반부에서는 십자가 목걸이에 망토를 입고 나와 성가대로 분한 합창단과 함께 '고해'를 부르며 무릎을 꿇었다. 윤복희의 '여러분'을 부르다가는 격정에 사로잡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관객과 합창한 마지막 곡 '너를 위해'는 음악 안에 살겠다는 서약 같았다.

"세상에 던져진 순간부터 나는 악마였고 천사였다. 나는 나를 파괴했으며 타락했으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나는 가수였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노래만은 놓지 않았다. 나는 노래 속에서 그토록 무서워했던 다른 사람의 눈물을 보았다. 난 이 지구상에 외로운 오직 가수일 뿐."(자막)

그는 26일 공연에 이어 내달 광주 청주 대구 수원,8월 부산 인천,9월 대전에서 전국투어를 펼칠 예정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