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무명용사의 혼' 렌즈에 담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1개국 누비는 사진작가 이병용 씨
신혼의 달콤함도 잠시였다. 그는 결혼 2주 만에 군인인 남편을 머나먼 한국땅에 보냈다. 6개월 뒤 6 · 25전쟁에 참전한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후 자식도 없이 60년을 홀로 지냈다. 남편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 없는 게 아쉬웠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에서 온 낯선 사람이 남편의 이름이 적힌 6 · 25참전용사 묘비(부산 대연동 유엔공원 소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들고 왔다. 그의 뺨엔 눈물이 흘렀다.
터키에서 살고 있는 팔순의 아나무르 씨와 사진작가 이병용 씨(54 · 사진)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씨는 아나무르 씨와 같은 6 · 25전쟁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의 영혼을 담기 위해 터키 에티오피아 등 21개 참전국을 누비며 '6 · 25전쟁 참전용사 사진 프로젝트'에 온 몸을 바치고 있다. 그는 사진 경력 20년의 베테랑 작가다.
이씨는 23일 기자와 만나 "우리는 전쟁 영웅만 기억했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21개국의 이름 없는 영웅을 기억하지 못했다"며 "사진을 통해 그분들의 아픔과 희생정신,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고마움까지 함께 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6 · 25전쟁 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06년이다. 당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자녀 20여명이 한국에 망명하겠다는 한 뉴스를 접했다. 이 씨는 곧바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외곽에 있는 6 · 25전쟁 참전용사들의 마을인 '코리안 빌리지'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6 · 25전쟁에 참가한 노병과 그의 가족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2008년에는 터키를 방문해 아나무르 씨를 포함,터키 참전용사들과도 정을 나눴다. 또 한국을 방문하는 참전용사들이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그들을 만나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그가 지금까지 5년에 걸쳐 만난 사람은 21개국 3500여명.그가 간직한 사진만 10만여장이다. 그는 "20년 넘게 사진에서 길을 찾았는데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담으며 인간이 사진을 통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을 이제야 발견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가장 보람있는 일로 우리나라를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만나 서로 끌어안고 울고,웃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것을 꼽았다.
이씨는 "지난 6월 초 일본 도쿄대 출판부 담당자를 만나 6 · 25전쟁 참전용사 사진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했더니 깜짝 놀라더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런 중요한 일을 개인이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우리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도 관심이 없고 오히려 일본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며 점점 잊혀져가는 전쟁의 기억을 아쉬워했다.
그는 2012년부터 8년 동안의 대장정을 떠난다. 2016년까지 6 · 25전쟁에 참전한 21개국을 돌아다니며 사진 촬영을 마치고 2020년까지 그가 담아낸 사진을 참전국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와 아직도 전쟁의 아픔이 서려 있는 비무장지대(DMZ)에서 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할 계획이다. 그는 "모든 전시가 끝나면 사진을 21개 참전국에 기증할 계획"이라며 "우리가 느끼고 있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모든 참전국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