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기업규모에 대한 편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대기업은 단기 이익에 집착하지 말라."(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혁신이 아니라 납품단가 등으로 단기 성과를 높이는 기업관료는 해고하라."(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대기업이 거대권력이 됐다. 스스로 혁신할 능력이 없다. 견제수단이 필요하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정책당국자들의 이런 발언은 국내 대기업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표출한 것이지만, 근본 밑바탕에는 대기업은 전혀 혁신적이지 않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기업규모 및 혁신과 관련한 주제는 역사적인 논란거리였다. 1940년대 슘페터가 "큰 기업이 더 효과적인 혁신자"라고 주장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연구개발 규모의 경제,자본 및 시장 접근성,학습효과 등의 이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작은 기업이 큰 기업보다 더 유연하고 기업가적이라고 여기는 쪽에서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이들은 규모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변화에 대한 저항과 지배구조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그 뒤 수많은 실증적인 연구들이 쏟아졌다. 몇몇 연구는 작은 기업이 종종 혁신의 측면에서 큰 기업을 능가하거나 더 짧은 개발 사이클을 보여준다고 결론 내렸지만, 큰 기업들이 혁신에서 작은 기업을 능가하는 경우를 지지하는 연구들도 나왔다.
한국을 포함해 성장과정이 다른 국가별로 들어가면 그 결과가 더욱 다양해졌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규모와 혁신의 관계가 50년도 훨씬 넘게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만약 중소기업들이 더 혁신적이거나 대기업들이 더 혁신적인 분야들이 딱 갈리는 그런 연구가 발견됐다면, 아마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찾아다니는 정책 당국자들은 환호성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술변화가 매우 빠른 분야도 대기업이 불리하다고 바로 결론 내릴 수 없는 다른 변수들도 생겨나고 있다. 경쟁 압력이 높아지면서 대기업도 작은 기업처럼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최근 방한했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30년 후 기업을 5000개로 늘리겠다는 것도 그런 움직임이다. 손 회장은 삼성 같은 중앙집권식이 아닌 자율적이고 분산된 조직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중앙집권화냐, 아니냐가 본질은 아니다. 그보다 대기업들은 기업이 커지면서 더욱 의존하게 되는 공식화,표준화를 더 걱정한다. 공식화,표준화는 효율성을 높여 주지만 창조성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단기적 성과와 장기적 혁신을 모두 달성하기 위해 한 회사가 두 종류의 다른 회사처럼 행동하는 양수겸장인(ambidextrous) 조직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아예 기업을 쪼개기도 한다. 구글, 애플은 말할 것도 없고 장수기업으로 꼽히는 IBM도,GE도 그렇다. 국내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SK텔레콤이 이동통신과 플랫폼으로 회사를 쪼개기로 했고 LG화학 등 다른 대기업들이 잇따라 기업분할을 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삼성그룹 내부의 태양광 사업 조정과 조직쇄신 바람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시장의 변화,새로운 경쟁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고 이것이 대기업의 혁신과 조직변화를 몰고오고 있다.
혁신과 기업규모는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혁신이 경쟁의 산물이라는 점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다.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의도에서 만들어낸 적합업종제도가 중소기업은 혁신적이라는 가설을 기각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대기업은 규제해야 한다는 발상이 기업의 새로운 진화를 막을까 걱정이다. 기업규모에 대한 편견, 실증적 연구가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관념적 기업정책은 그래서 위험하다.
안현실 논설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기업규모 및 혁신과 관련한 주제는 역사적인 논란거리였다. 1940년대 슘페터가 "큰 기업이 더 효과적인 혁신자"라고 주장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연구개발 규모의 경제,자본 및 시장 접근성,학습효과 등의 이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작은 기업이 큰 기업보다 더 유연하고 기업가적이라고 여기는 쪽에서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이들은 규모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변화에 대한 저항과 지배구조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그 뒤 수많은 실증적인 연구들이 쏟아졌다. 몇몇 연구는 작은 기업이 종종 혁신의 측면에서 큰 기업을 능가하거나 더 짧은 개발 사이클을 보여준다고 결론 내렸지만, 큰 기업들이 혁신에서 작은 기업을 능가하는 경우를 지지하는 연구들도 나왔다.
한국을 포함해 성장과정이 다른 국가별로 들어가면 그 결과가 더욱 다양해졌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규모와 혁신의 관계가 50년도 훨씬 넘게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만약 중소기업들이 더 혁신적이거나 대기업들이 더 혁신적인 분야들이 딱 갈리는 그런 연구가 발견됐다면, 아마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찾아다니는 정책 당국자들은 환호성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술변화가 매우 빠른 분야도 대기업이 불리하다고 바로 결론 내릴 수 없는 다른 변수들도 생겨나고 있다. 경쟁 압력이 높아지면서 대기업도 작은 기업처럼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최근 방한했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30년 후 기업을 5000개로 늘리겠다는 것도 그런 움직임이다. 손 회장은 삼성 같은 중앙집권식이 아닌 자율적이고 분산된 조직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중앙집권화냐, 아니냐가 본질은 아니다. 그보다 대기업들은 기업이 커지면서 더욱 의존하게 되는 공식화,표준화를 더 걱정한다. 공식화,표준화는 효율성을 높여 주지만 창조성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단기적 성과와 장기적 혁신을 모두 달성하기 위해 한 회사가 두 종류의 다른 회사처럼 행동하는 양수겸장인(ambidextrous) 조직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아예 기업을 쪼개기도 한다. 구글, 애플은 말할 것도 없고 장수기업으로 꼽히는 IBM도,GE도 그렇다. 국내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SK텔레콤이 이동통신과 플랫폼으로 회사를 쪼개기로 했고 LG화학 등 다른 대기업들이 잇따라 기업분할을 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삼성그룹 내부의 태양광 사업 조정과 조직쇄신 바람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시장의 변화,새로운 경쟁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고 이것이 대기업의 혁신과 조직변화를 몰고오고 있다.
혁신과 기업규모는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혁신이 경쟁의 산물이라는 점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다.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의도에서 만들어낸 적합업종제도가 중소기업은 혁신적이라는 가설을 기각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대기업은 규제해야 한다는 발상이 기업의 새로운 진화를 막을까 걱정이다. 기업규모에 대한 편견, 실증적 연구가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관념적 기업정책은 그래서 위험하다.
안현실 논설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