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9월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이 열릴 예정인 가운데 상징성이 있는 '헤지펀드 1호' 간판을 따내기 위한 금융사 간 물밑 경쟁이 벌써부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형 헤지펀드 1호로 등록될 경우 앞으로 자본시장 역사에서 상징성은 물론 정책당국의 '인큐베이팅(incubating)' 지원까지 노려볼 수 있어 쟁탈전은 갈수록 가열될 전망이다.

우리 미래 삼성 등 '기싸움' 치열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헤지펀드 1호를 선점하기 위한 관련 금융사 간 물밑 전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다소 높은 규제(일임계약 5000억원 이상)로 사전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는 자문사보다 증권업계 내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한 대형 증권사 고위 간부는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을 여는 자본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20일 입법예고되면서 누가 '헤지펀드 1호'를 가져갈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정책당국이 헤지펀드 1호를 어떤 방식으로 정할 것인지부터 경쟁사 준비상황 파악 등 치열한 정보전까지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손꼽아온 대형 증권사들도 저마다 장점을 내세우며 자신들이 '헤지펀드 1호' 타이틀을 거머쥘 것이라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PEF 1호에 이어 헤지펀드 1호까지 넘보고 있는 미래에셋증권의 준비 상황이 재빠르다.

미래에셋은 3년 전인 2008년말부터 기존 전략팀을 중심으로 헤지펀드 서비스 관련 태스크포스팀(TF)을 구성해 지난해 8월 관련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어 지난 3월 윈튼 캐피탈 매니지먼트(Winton Capital Management)와 '윈튼퓨처스펀드' 판매계약 및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데 성공했다.

윈튼 캐피탈 매니지먼트는 1997년 영국에서 설립된 대안투자 분야의 글로벌 독립 자산운용사로, 운용자산이 모두 185억달러(약 2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은 현재 기타 선물 매매전략(CTA) 펀드와 판매 계약 체결을 계속 진행 중이고, 이 외에 매크로와 이벤트드리븐 등 다양한 전략의 헤지펀드 상품을 마련하고 있다.

미래에셋은 "윈튼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대표 펀드를 판매하고 있을뿐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로서 다양한 부문에서 상호 협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미 업계 최고 수준으로 구축된 헤지펀드 관리 인프라 및 데이터베이스, 사후관리 시스템을 보완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래에셋은 동시에 프라임 브로커 업무를 위한 서비스팀도 이미 꾸려놨다. 미래에셋은 작년 9월 GIS(Global Investor Services)본부를 만든 뒤 프라임 브로커리지 업무를 강화키로 결정, 지난 2월 프라임 브로커리지실로 격상시켰다.

우리투자증권 역시 만만하지 않은 1호 경쟁상대다.

우리투자증권은 2008년 자기자본 1억달러를 투자해 싱가포르에 별도법인인 '우리 앱솔루트 파트너스(Woori Absolute Partners)'를 세워 헤지펀드를 직접 운용해오고 있다. 현재 초기 자본투자(Seeding Capital Business), 재간접 헤지펀드(Fund of Hedge Funds Business)형태로 운용을 하고 있다는 게 이 증권사의 설명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초기자본투자는 구안 옹이 운용하는 브림 아시안 크레딧펀드(Brim Asian Credit Fund)에 인큐베이션 시더(Seeder)로서 참여해 헤지 펀드 설립 및 운용에 대한 전반적인 노하우를 습득하고 있다"며 "구안 옹 펀드는 아시아 회사채 투자를 통한 절대수익 전략을 추구하고 있으며 특히 구안 옹은 KIC(한국투자공사)의 전 CIO을 역임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인큐베이션 투자는 투자 수익 이외에 헤지펀드 레버리지 수익을 공유해 추가수익을 달성하는 첨단투자기법"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프리미어 클래스' 등 재간접 헤지펀드 11개 상품도 우리투자증권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자산관리의 대표주자인 삼성증권은 대안투자(AI)팀을 구성해 헤지펀드 시대에 대응해 나가고 있다.

삼성증권은 "우선 8명의 직원들을 AI팀에 배치해 놨으며 계속 확대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간부 사원 이상은 헤지펀드 실사 및 실무를 수년간 직접 경험해본 사원으로 팀을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간 간부급 사원들도 헤지펀드 실무를 한 경험이 있고, 팀원들이 각 전략별로 헤지펀드를 실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중"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증권은 또 해외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미국 현지 인력도 보유하면서 해외 헤지펀드와 정보소통을 원활히 진행 중이다.

헤지펀드 1호, 자본시장 역사적 상징성 절대적

타이틀 '헤지펀드 1호'를 따낸 곳은 앞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1호는 한국의 자본시장사(史)에서 '최초 헤지펀드'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헤지펀드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Alfred Winslow Jones)는 약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헤지펀드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1호는 더욱이 '법 밖'의 헤지펀드를 '법 안'으로 들여온 전 세계 최초의 헤지펀드이기도 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20개국(G20)이 오히려 헤지펀드 관련 규제 수위를 높이려고 준비 중이어서 한국형 헤지펀드가 국가적 관심사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역대 1호 토종 사모전문투자펀드(PEF)인 '미래에셋 1호'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박 PEF'로 관련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명성이 뒷받침돼 잇따라 뭉칫돈이 모였고, 그 결과 지난달 또 다른 미래에셋PEF가 세계 1위 골프용품 제조사인 아쿠쉬네트를 인수ㆍ합병(M&A)했다. 토종 PEF가 해외 M&A에 나서 성공한 첫 사례다.

미래에셋 1호는 2004년 투자금 1400억원을 모아 설립됐으며, 비상장 금융기관에 투자해 2년 반 만에 수익률 50%를 달성했다. 당시 투자자들인 유한책임사원(LP)들은 무려 700억원을 배당받았다. 미래에셋 1호는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실질적인 운용책임역인 업무책임사원(GP)을 맡았었다.

◆'인큐베이팅' 지원까지 누릴 수도…경쟁은 '뷰티 컨테스트'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연내 헤지펀드 1호는 이른바 '뷰티 컨테스트' 경쟁을 통해 뽑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의 자기자본은 물론, 자산, 운용인력, 전략, 투자자 성격 등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1호는 금융당국의 인큐베이팅 지원까지 누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형 헤지펀드 초기 생태계를 사실상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당국이 앞서 연기금과 기관의 적극적 투자를 이끌어 낼 것이고, 이런 혜택을 헤지펀드 1호가 고스란히 챙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달 한국정책금융공사는 기업재무안정PEF인 '블루오션 기업재무안정 제1호 PEF에 투자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출자가 기업재무안정PEF를 활용해 회생기업을 정상화시키려는 사실상 첫 사례로 보고 있다.

금융위는 일단 이르면 9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 차관ㆍ국무회의 등을 거치면 헤지펀드 도입이 가능해 질 것이고, 관련업계는 2개월 정도 펀드 설립에 필요한 절차를 밟아 연말께 1호가 탄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과장은 "헤지펀드 선정은 운용전략과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아무래도 지속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헤지펀드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곳이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단순한 선착순 방식이 아닌 정성평가를 가미하고, 1호라는 상징성을 배가시킬 만한 운용사에게 타이틀을 주겠다는 얘기인 셈이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