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작품 기증은 6ㆍ25 참상 알리려는 선친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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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우신출 화백 아들 성하 씨
23일 95점 전쟁기념관에 전달
23일 95점 전쟁기념관에 전달
종군화가들에게 6 · 25전쟁은 처절한 전투로만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기록화는 전장의 아픔과 폐허의 풍경,동족상잔의 비극에 처한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종군화가 단광 우신출 화백(1911~1991)은 9 · 28 서울 수복 이후 17일 동안 동부전선을 따라 북진하는 국군과 함께 이동하며 스케치와 수채화,일기 등 95점을 남겼다.
이를 소장해온 우 화백의 둘째아들 성하씨(S&T중공업 상임고문)는 23일 부친의 종군기록화와 희귀자료들을 전쟁기념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그는 "전쟁기념관에 작품이 소장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며 "전쟁의 참상과 우리 민족의 아픔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쟁 전후에도 아버지는 부산 인근을 분주히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며 "붓과 물감으로 대지와 바다를 만나고 미술의 창으로 자연을 만나면서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설명했다.
기증 작품 중에는 종군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수채화 '진군''38경계' 등을 비롯해 화가의 종군 일상을 조명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망라돼 있다. 고된 행군 도중 휴식을 취하는 초병,국군을 환영하는 주민들,외금강산 온정교 풍경 등도 눈길을 끈다.
전쟁기념관은 우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일인 9월20일에 맞춰 기증된 종군화 전시회를 시작할 예정이다.
우 화백은 김종식 임응구 씨 등과 함께 부산 화단을 가꾼 1세대 토박이 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1954년 부산 기장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이후 1977년 퇴직할 때까지 후학 양성에 힘쓰며 화업을 이어갔다. 독학으로 화단에 입문해 63년의 화력을 쌓은 그는 미술교육연구회,후기회(後期會)를 창설했고,1957년 국체(國體) 카드세션을 총지휘해 화제를 모았다.
1932년 부산미술전람회에 이인성 이상돈 김원갑 씨 등과 함께 작품을 냈고,1937년 춘광회 첫 전시에 양달석 서성찬 김남배 씨 등과 참여하며 부산 화단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일제 시대 선전(鮮展)에 입선한 그의 작업은 향토색 짙은 사실주의 화풍으로 이어졌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은 결코 그리지 않는다'는 투철한 리얼리즘 정신에 입각해 낙동강,부산 시내와 교외 풍경을 담은 그림 1000여점을 남겼다.
그의 작품에는 한국 근대화단의 단면이 투영돼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삼행의 길'(1931)을 비롯해 '농가풍경'(1932),'정물1'(1933),'초량풍경'(1933),'자화상'(1934),'가지가 있는 정물'(1936),'버드나무'(1944) 등 초기작들은 캔버스에 유화를 사용한 것.투박하고 거친 붓질과 소박한 주제 의식에서 출발해 감각적인 터치로 유화의 참맛을 살렸다.
1970년대의 '강변풍경'(1972),'여름 숲속에서'(1973) 등은 감각적인 색채와 속도감 있는 붓질,탄탄한 구도를 보여준다.
김준기 미술학예연구사는 "평생 부산을 지키며 살았던 그는 시류와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고집스레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한 예술가"라고 평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