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시(詩)를 자주 읊었다. 정책이 뜻대로 가지 않을 때는 시로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어렸을 적 문학가나 영화감독이 꿈이었다는 '낭만파'다운 면모다. 지난달 말 송별 기자 오찬에서도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되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낭송했다.

윤 전 장관에 비해 박재완 현 장관은 학술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하버드대 출신 학자답다. 듣다보면 강의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취임 기자간담회에선 첫마디부터 '다차원의 동태적 최적화 목적함수''쌍대성(duality)'등 전문 용어를 동원해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스타일이 다른 두 장관이지만 유독 정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대해선 단호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윤 전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국회가 깽판"이라고 발언해 한동안 정치권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했다. 그럼에도 국회의 포퓰리즘 행태에 대해선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박 장관도 취임사에서 "영화 '300'에 나오는 스파르타 최정예 전사들처럼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나라 곳간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가 국회 상임위에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그럼 우리가 물리쳐야 할 페르시아군이냐"며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번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조세소위(20~21일)와 전체회의(23일)가 잇따라 열린다. 감세를 둘러싸고 국회와 정부 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한나라당이 지난주 의원총회에서 법인세 감세 철회를 사실상 당론으로 채택한 이후 열리는 자리인 만큼 포퓰리즘을 견제하겠다는 박 장관으로선 국회를 상대로 한 첫 시험무대로 볼 수 있다. 그가 정치권의 감세 철회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전사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

이번주에는 국내 경기에 영향을 미칠 대외변수들이 즐비하다. 미국의 '2차 양적완화(유동성 공급)'종료와 향후 방향을 논의할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21~22일),그리스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유로지역 정상회담(23~24일) 등이 대표적이다. 논의 결과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은 물론 외환시장이 출렁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리스 재정위기 등 대외 악재에 상대적으로 내성을 보여왔던 원 · 달러 환율이 어디로 튈지에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대외 악재로 증시가 널뛰기하는 것과 달리 원 · 달러 환율은 1080~1090원의 박스권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경기지표로는 개인들의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6월 소비자동향지수(CSI)'가 24일 나온다. 물가상승 우려를 반영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관심인데,최근 소비자물가에 선행하는 생산자물가,수입물가 등이 안정세를 보인 점을 감안하면 전달보다 하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22일부터는 '국민이 참여하는 나라살림 토론회'가 열린다. 향후 5년간 국가재정운용계획과 내년 예산을 확정하기 전에 분야별 전문가와 일반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다. 특히 반값 등록금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격론이 벌어질 예정인데,모든 과정은 공중파 방송으로 생중계된다.

정종태 경제부 차장/정책팀장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