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2세가 뛴다] (20) 동신관유리공업 "창업 후 43년 연속 매출 늘어…100년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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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 향상 올인한 父
주사 앰플 생산 첫 기계화…기술 배운 일본에 역수출도
새 성장동력 찾는 子
직원교육 등 경영방식 개선…바이오·해외시장서 승부
주사 앰플 생산 첫 기계화…기술 배운 일본에 역수출도
새 성장동력 찾는 子
직원교육 등 경영방식 개선…바이오·해외시장서 승부
9일 인천 부평구 창천동에 있는 동신관유리공업.공장 안에 들어서자 열기가 후끈 밀려온다. 유리관을 섭씨 1100도 이상의 불로 녹여 앰플(밀폐형 주사용 유리용기)과 바이알(주사용 유리용기)을 만드는 작업 현장이다. 한여름에는 실내 온도가 40도를 훌쩍 넘어서기 일쑤라고 한다. 서정섭 회장(74)과 아들 서한석 부사장(42)은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연신 닦아내면서 작업 현장을 둘러봤다.
43년째 앰플과 바이알 제조라는 한우물만 파온 서 회장은 이 분야 국내 제조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다. 줄곧 '최초' 기록을 갈아치웠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계화 생산에 성공했고 손가락으로 톡 쳐서 앰플 꼭대기를 잘라낼 수 있는 '원 포인트 컷' 기술도 처음 선보였다.
동신관유리공업은 설립 이후 단 한차례도 매출이 꺾인 적이 없다. 외환위기 때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120여명의 종업원이 지난해 19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초고속 승진 열차에서 미련없이 하차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취직한 서 회장은 직장생활 3년을 채우지 못했다. 빈틈 없는 업무 처리 스타일이 눈에 띄어 입사 2년 만에 생산라인 총괄과장으로 전격 발탁됐지만 직접 사업을 꾸리고 싶은 마음에 미련없이 사표를 썼다. 앰플 생산을 기계화하면 승산이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서 회장은 때마침 매물로 나온 앰플 제조사를 찾아냈다. 일본산 반자동식 앰플 생산장비를 갖췄지만 기술이 달려 매물로 나온 한국앰플공업사(동신관유리공업의 전신)였다. 이 회사를 인수한 서 회장도 2년 이상 마음 고생을 했다. 수작업으로 만든 유리관을 원자재로 쓰다 보니 완제품의 품질을 균일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던 중 한국유리가 유리관 생산을 자동화했고 이를 계기로 동신관유리공업은 본격적으로 앰플을 만들기 시작했다. "리어카에 앰플을 가득 싣고 유한양행을 찾아가 무조건 '써보라'고 권했죠.담당자가 오히려 우리 제품을 보고는 고맙다고 악수를 청하더군요. "
◆해외에서도 인정한 기술력
1987년 동신관유리공업이 원 포인트 컷 기술을 확보하기 전까지 국내 병원 등에서는 주사액이 담긴 앰플의 꼭지를 따려고 송곳 같은 날카로운 도구를 썼다. 이 과정에서 유리가루가 주사액에 섞이는 일이 잦았다. 서 회장은 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앰플조합을 끈질기게 설득해 고가의 앰플 커트장비(원 포인트 컷 기술)를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프리미엄 제품이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죠.그러나 대다수 국내 제약사들은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었어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 하지만 돌파구는 의외로 쉽게 뚫렸다. 독일 훽스터가 대주주인 한독약품 덕분이었다. "획기적인 제품이라는 독일 본사의 결론이 나오자 한독약품이 월 200만개를 독점 공급해 달라고 하더군요. "
백신 등 보존 수명이 길지 않은 주사액 용기로 쓰이는 바이알 제조 기술력도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2009년 동유럽에서 백신 주사제 수요가 일시적으로 급증해 물량이 달리자 품질관리가 까다로운 유럽 업체가 직접 찾아와 생산을 의뢰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사업 초기부터 기계의 수리와 개량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집했다. 고장이 나거나 규격이 다른 제품을 만들 때마다 제작사에 의존하면 시장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 기계를 들여오면 생산라인에 맞도록 개량부터 했다.
초기에는 기술을 배우려고 일본을 수시로 찾았다. 유리봉 가열온도 노하우를 터득하기 위해 일본 회사를 찾아가 "엉터리 기계를 판 것 아니냐.믿지 못하겠으니 당신네 생산라인을 직접 봐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어깨 너머로라도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축적한 기술력으로 지난해 중고 바이알 제조기를 개량,전(全) 생산 과정을 자동화한 시스템을 일본에 수출했다.
◆경영 승계…시장 넓혀 제2 도약
서 회장은 지난해 아들 서 부사장에게 회사 경영을 맡겼다. 대표이사 자리도 곧 넘겨줄 작정이다. 회사가 도전을 맞고 있지만 13년 동안 묵묵히 경영 수업을 받아온 아들을 믿기 때문이다. "(아들의) 해외 사업 감각이 예사롭지 않아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사업에서 성과를 낼 것으로 믿습니다. "
부친의 권유로 한국외대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서 부사장은 ㈜선경(현 SK네트웍스)에서 3년가량 근무하며 무역 업무를 익혔다. 외환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1998년 "도와 달라"는 부친의 요청에 순순히 따랐던 서 부사장은 "당시 가업 승계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주먹구구식 경영 방식을 개선하고 직원 교육 등으로 회사 역량을 키워 나갈 생각"이라며 "바이오 분야와 해외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발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43년째 앰플과 바이알 제조라는 한우물만 파온 서 회장은 이 분야 국내 제조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다. 줄곧 '최초' 기록을 갈아치웠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계화 생산에 성공했고 손가락으로 톡 쳐서 앰플 꼭대기를 잘라낼 수 있는 '원 포인트 컷' 기술도 처음 선보였다.
동신관유리공업은 설립 이후 단 한차례도 매출이 꺾인 적이 없다. 외환위기 때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120여명의 종업원이 지난해 19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초고속 승진 열차에서 미련없이 하차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취직한 서 회장은 직장생활 3년을 채우지 못했다. 빈틈 없는 업무 처리 스타일이 눈에 띄어 입사 2년 만에 생산라인 총괄과장으로 전격 발탁됐지만 직접 사업을 꾸리고 싶은 마음에 미련없이 사표를 썼다. 앰플 생산을 기계화하면 승산이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서 회장은 때마침 매물로 나온 앰플 제조사를 찾아냈다. 일본산 반자동식 앰플 생산장비를 갖췄지만 기술이 달려 매물로 나온 한국앰플공업사(동신관유리공업의 전신)였다. 이 회사를 인수한 서 회장도 2년 이상 마음 고생을 했다. 수작업으로 만든 유리관을 원자재로 쓰다 보니 완제품의 품질을 균일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던 중 한국유리가 유리관 생산을 자동화했고 이를 계기로 동신관유리공업은 본격적으로 앰플을 만들기 시작했다. "리어카에 앰플을 가득 싣고 유한양행을 찾아가 무조건 '써보라'고 권했죠.담당자가 오히려 우리 제품을 보고는 고맙다고 악수를 청하더군요. "
◆해외에서도 인정한 기술력
1987년 동신관유리공업이 원 포인트 컷 기술을 확보하기 전까지 국내 병원 등에서는 주사액이 담긴 앰플의 꼭지를 따려고 송곳 같은 날카로운 도구를 썼다. 이 과정에서 유리가루가 주사액에 섞이는 일이 잦았다. 서 회장은 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앰플조합을 끈질기게 설득해 고가의 앰플 커트장비(원 포인트 컷 기술)를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프리미엄 제품이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죠.그러나 대다수 국내 제약사들은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었어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 하지만 돌파구는 의외로 쉽게 뚫렸다. 독일 훽스터가 대주주인 한독약품 덕분이었다. "획기적인 제품이라는 독일 본사의 결론이 나오자 한독약품이 월 200만개를 독점 공급해 달라고 하더군요. "
백신 등 보존 수명이 길지 않은 주사액 용기로 쓰이는 바이알 제조 기술력도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2009년 동유럽에서 백신 주사제 수요가 일시적으로 급증해 물량이 달리자 품질관리가 까다로운 유럽 업체가 직접 찾아와 생산을 의뢰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사업 초기부터 기계의 수리와 개량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집했다. 고장이 나거나 규격이 다른 제품을 만들 때마다 제작사에 의존하면 시장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 기계를 들여오면 생산라인에 맞도록 개량부터 했다.
초기에는 기술을 배우려고 일본을 수시로 찾았다. 유리봉 가열온도 노하우를 터득하기 위해 일본 회사를 찾아가 "엉터리 기계를 판 것 아니냐.믿지 못하겠으니 당신네 생산라인을 직접 봐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어깨 너머로라도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축적한 기술력으로 지난해 중고 바이알 제조기를 개량,전(全) 생산 과정을 자동화한 시스템을 일본에 수출했다.
◆경영 승계…시장 넓혀 제2 도약
서 회장은 지난해 아들 서 부사장에게 회사 경영을 맡겼다. 대표이사 자리도 곧 넘겨줄 작정이다. 회사가 도전을 맞고 있지만 13년 동안 묵묵히 경영 수업을 받아온 아들을 믿기 때문이다. "(아들의) 해외 사업 감각이 예사롭지 않아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사업에서 성과를 낼 것으로 믿습니다. "
부친의 권유로 한국외대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서 부사장은 ㈜선경(현 SK네트웍스)에서 3년가량 근무하며 무역 업무를 익혔다. 외환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1998년 "도와 달라"는 부친의 요청에 순순히 따랐던 서 부사장은 "당시 가업 승계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주먹구구식 경영 방식을 개선하고 직원 교육 등으로 회사 역량을 키워 나갈 생각"이라며 "바이오 분야와 해외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발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