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대폭 끌어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8%로 돼 있는 BIS 비율을 대형 은행에 대해서는 더 높게 요구해 건전성을 높여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사태를 막아보자는 발상이다. 가이트너 재무장관 등 미 정부 고위인사들이 은행 규제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FRB 측에서 제기된 주장이어서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BIS 자기자본비율 상향조정을 들고 나온 진짜 이유다. 최근 미국 경제는 썩 좋은 모습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 자기자본 규제 강화는 자칫 경제회복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를 모를리 없는 FRB가 이 문제를 들고 나온 데는 결국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BIS 비율은 1988년 당시 FRB 의장이던 폴 볼커 주도로 도입됐다.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리면서 70년대를 지배했던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다스렸던 사람이 바로 폴 볼커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고층 빌딩과 기업들이 속속 일본 자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보고 BIS에 새로운 은행 건전성 규제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겉으로는 건전성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일본 견제용'이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평균 10%였던 미국 및 유럽계 은행들과 달리 자기자본비율이 6%에 그쳤던 일본은행들은 BIS 비율 8%를 맞추기 위해 대출을 회수하고 주식 채권 부동산 등을 팔아야 했고 이것이 결국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지금 미국이 겨냥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의 부진한 실물경제를 감안하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약화된 미국 금융의 헤게모니를 되찾기 위한 것으로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물론 음모론적 해석이라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급부상한 신흥국 및 일부 유럽계 은행들을 견제하고 미국의 경쟁력을 되찾기 위한 목적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BIS 비율 조정은 건전성 부문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미국 은행들에는 무조건 유리한 게임이다. 문제는 이것이 국내 은행산업에도 직접적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미국 당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