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당국은 금융 시스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대형 금융사에 대한 자본 요건을 당초 예상보다 강화할 방침이다. 이 같은 조치는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막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금융사들의 대출을 위축시켜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점에서 논란을 빚을 전망이다.

대니얼 타룰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는 4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에서 가진 연설에서 "자산이 일정 규모 이상인 금융사들은 자산의 위험 정도를 감안해 8~14%의 자본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산 규모별로 자본 요건을 강화할 경우 파산시 파급 효과가 크다고 판단되는 일부 대형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당국자들이 지난해 합의한 바젤3의 자본 요건(자기자본비율 7%)보다 두 배 이상 자본을 쌓아야 한다. FRB는 강화된 자본 요건을 적용함으로써 인수 · 합병(M&A) 등을 통해 자산을 불리는 현상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타룰로 이사의 발언은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금융사를 규제하는 방안을 두고 국가 간 의견차를 보이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등 미국 정책당국자들은 시스템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선 국제적으로 합의된 규제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유럽연합(EU) 등은 대형 금융사에 대한 추가 규제안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미헬 바니에르 EU 금융서비스 집행위원은 "바젤 합의안 이외의 추가적인 자본 요건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월가 대형 은행들은 미국 경제 회복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자본 요건이 강화되면 결과적으로 대출 여력이 감소해 신용시장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자본 요건 등 금융 규제가 강화되면 고객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며 "대출 영업 위축에 따른 수익성 감소를 서비스 수수료 인상으로 보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월가 대형 은행들은 미국 경제 회복이 예상보다 지지부진한 만큼 구체적인 자본 요건 등이 확정될 때까지는 당분간 대출을 자제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분석에 따르면 자기자본비율을 10%만 적용해도 씨티그룹은 내년 중 130억달러,모건스탠리는 40억달러의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미국 경제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겠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5월 실업률이 올 들어 가장 높은 9.1%에 달하는 등 최근 고용시장 불안이 가중되는 데다 소비심리 위축과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점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미국의 지난달 신규 취업자 수가 예상보다 크게 낮은 5만4000명에 그쳐 고용시장이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8개월 만의 최저치로 소비 위축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주택 시장이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하강)'에 빠지면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금융사들의 어려움이 더 가중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높은 휘발유 가격,일본 대지진,유럽의 재정 불안 등이 계속되고 있고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것"이라며 "회복하는 과정에서 때때로 강한 역풍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