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증권 '자산관리 3차 대전'] 내년 25조 시장 '랩의 전쟁'…증권사 독점에 은행 '반격'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시중 자금을 무섭게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떠오른 랩 어카운트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증권사들이 독점해온 자문형 랩 시장에 은행권이 도전장을 던지고 나섰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PB) 시장을 둘러싼 은행과 증권사 간 경쟁도 달아오르며 '자산관리 시장 3차 대전'이 불붙을 전망이다.

◆자문형 투자상품 시장 격돌

자문형 랩은 펀드와 정기예금에서 이탈한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며 지난 4월 말 8조3000억원으로 늘어났다. 1년 전(1조569억원)에 비해 7.8배나 늘어난 규모다. 내년 말에는 15조원으로 불어날 것이라는 게 토러스증권의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0억원 이상의 뭉칫돈을 증권사 랩 상품에 맡긴 부자들은 작년 3월 51건에서 지난 3월 118건으로 1년 새 131% 급증했다.

은행 자문형 신탁 시장은 중립적인 시나리오로 볼 때 내년 말 6조4000억원,공격적인 시나리오로 볼 때는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토러스증권은 예상했다. 증권사 자문형 랩과 은행 자문형 신탁을 합쳐 내년 말 전체 자문형 투자상품 시장 규모는 21조~2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중 은행 자문형 신탁이 30% 이상을 잠식할 것이란 분석이다.

자문형 신탁과 자문형 랩은 모두 자문사에서 투자 자문을 받는다는 점에서 상품 내용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자문형 랩은 증권사 상품이고,자문형 신탁은 주로 은행에서 판매한다는 점이 다르다. 자문형 랩은 고객 명의로 투자하는 반면 자문형 신탁은 은행이 고객의 자산을 넘겨받아 직접 소유권을 갖는다.


◆가열되는 PB 시장 쟁탈전

"우리 회사 PB팀장들이 줄줄이 증권사로 옮긴 까닭을 뭐라고 생각하나요?"

최근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해외 경영학석사(MBA) 선발 과정을 진행한 시중은행 인사담당 부행장은 면접장에서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은행 관계자는 "요즘 은행들의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가 PB팀장들의 이직"이라고 전했다.

은행과 증권사 간 '자산관리 3차 대전'을 둘러싼 경쟁의 한 단면이다. 자산관리 경쟁은 삼성증권이 먼저 불을 붙였다. 삼성은 금융자산을 30억원 이상 보유한 사람에게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SNI(special noble and intelligent) 점포를 서울파이낸스센터 등 4곳에 개설했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역시 10억원 이상 자산가를 겨냥한 PB센터를 4월 잇따라 선보였다.

은행들도 PB서비스 수성에 나섰다. 신한은행은 30억원 이상 자산을 가진 고객을 대상으로 한 종합 자산관리센터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민은행은 서울 강남지역에 초대형 PB센터를 내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부산 대구 등 지방 거점 4곳에 PB센터를 신규 개설하기로 했다.

PB팀장을 스카우트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은 작년 말부터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에서 PB팀장 10여명을 각각 연봉 2억원 안팎을 주고 스카우트해 왔다.

▶ 자문형 랩

고객이 맡긴 재산을 하나의 계좌로 묶어 통합적으로 관리해주는 종합금융서비스인 '랩 어카운트(wrap account)'의 일종.외부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기초로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상품을 자문형 랩이라고 한다. 대비되는 개념으로 투자 판단까지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일임형 랩'이 있다.

유병연/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